윤석열 대통령이 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함께 오찬을 하기 전 창밖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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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시대정신으로 내세운 ‘86 운동권 청산’을 위해 서울에 지역구를 둔 운동권 출신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을 겨냥한 ‘자객 공천’을 현실화할 조짐이다. 민주당 의원이 대다수인 수도권에서 운동권심판론으로 맞불을 놔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뛰어넘으려는 전략이다. 시스템 공천을 공언한 한 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당 경선에 뛰어든 경쟁자들의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29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전날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전 의원을 언급하며 “임종석과 윤희숙 (중에)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민주당이 총선 구도로 경제민생론을 제기하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윤 전 의원을 대비해 민주당의 프레임을 깨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경제를 망친 주범들이 운동권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경제민생론을 얘기한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동감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정치무대를 장악해 온 사람들이 민생경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취임 때부터 ‘운동권 특권정치’와 ‘개딸 전체주의’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 마포을 현역 의원인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에 맞설 후보로 김경율 비대위원을 띄우며 정 최고위원을 “개딸 민주주의,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의 특권 정치, 이재명 개인 사당화로 변질된 안타까운 지금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얼굴”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총선 지역구 출마 희망자들의 공천 신청 접수를 시작한 이날, 한 위원장 기조에 발맞춘 출마 선언이 이어졌다. 서울 강남갑 현역 의원인 태영호 의원은 서울 구로을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지금은 586 운동권 정치인이 아니라 주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윤 의원을 겨냥했다. 바로 옆 지역구인 구로갑엔 YTN 앵커 출신인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이 앞서 출마를 선언했다. 구로갑 현역 의원은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민주당 의원이다. 부산 해운대갑에서 3선을 지낸 하태경 의원과 윤석열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이영 전 의원은 이날 박성준 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서울 중·성동을 출마를 발표했다. 이 지역엔 KDI 출신 이혜훈 전 의원도 앞서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밖에 검사 출신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민석 민주당 의원(서울 영등포을)에게 도전장을 던졌고, 한 위원장 취임 후 영입된 전상범 전 부장판사는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이재명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서울 강북갑) 지역구에 출사표를 냈다. 이재영 전 의원은 이해식 의원(서울 강동을·전 서강대 총학생회장), 이승환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박홍근 의원(서울 중랑을·전 경희대 총학생회장), 김재섭 전 당협위원장은 인재근 의원(서울 도봉갑·노동운동가 출신)에게 각각 도전한다.
민주당은 운동권 청산이란 철 지난 구호를 들고나와 윤석열 정부 실정을 은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출마 대상으로 거론되는 여당 인사 가운데 한 위원장이 앞세운 경제 전문가는 드문 것도 사실이다. 참신한 새 인물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임종석 전 실장은 이날 채널A 유튜브에 출연해 “지나치게 퇴행적이고 과거 군부 쿠데타 세력이 계속했던 얘기”라며 “구태정치 중 구태정치”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민주당 어떤 후보도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했으니 찍어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며 “부적절하거나 잘못한 것을 지적하면 될 일이지 전부 묶어서 프레임 씌우고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한 위원장이 입에 경제를 올리려면 경제를 망친 윤석열 정권 실정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표 자객 공천이 가시화하자 해당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해 온 당내 인사들은 반발했다. 중·성동갑 예비후보인 권오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이날 SNS에서 “사실상 전략공천인 것처럼 얘기하는 윤 전 의원의 인식이 기존 기득권 정치권 인사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 비대위원장이 공정하게 공천할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같은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최원준 국민의힘 서울시당 홍보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지역구를 메뉴판에서 메뉴 고르듯 하는 현 정치인들의 작태가 과연 지역주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앞서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띄웠을 땐 이 지역 김성동 전 당협위원장이 격렬히 반발했다. 한 위원장이 ‘이재명 저격수’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천 계양을 공천을 시사하자, 2022년 6·1 보궐선거에서 이재명 대표와 맞붙었던 윤형선 전 당협위원장이 “연고 없는 낙하산 공천”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사천’ 논란을 일축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가 경쟁력 있는 후보들, 야당에 적절하게 대응할 지역구에 대해 경선을 만들고 우수 후보를 소개해주는 게 왜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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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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