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출시 행사에서 소개한, 세상을 바꾼 컴퓨터 ‘매킨토시’,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의 실질적 표준을 만든 제품이자 21세기를 연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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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간의 길은?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고 여겨온 언어·사고 능력을 기계가 갖게 되었습니다. 생성 인공지능의 파고가 닥친 세상에서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새 글이 올라옵니다.
40년 전 세상을 바꾼 특별한 기계가 등장했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그 기계의 영향으로부터 무관한 사람은 사실상 없다. 애플컴퓨터의 ‘매킨토시(128K 모델)’다.
1984년 1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와 가까운 플린트센터에서 스티브 잡스가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처음 공개했다. 잡스는 휴대용 케이스에서 베이지색 상자를 꺼내 플로피 디스크를 집어넣고 뒤로 물러났다.
반젤리스가 작곡한 영화 ‘불의 전차’ 주제음악이 흘러나오자 작은 흑백 모니터 화면에는 ‘Macintosh(매킨토시)’라는 단어와 함께 이미지가 깜박였다. 조지 오웰의 빅브러더가 지배하는 좀비들의 세상에 젊은 여성이 뛰어들어가 해머를 던져 ‘텔레스크린’(오웰의 소설 ‘1984’에서 집집마다 설치된, 빅브러더가 통제하는 TV 모양의 감시장치)을 박살내는, 앞서 슈퍼볼 경기에서 방영한 광고가 예고한 기기였다. 매킨토시가 기존의 컴퓨터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꿔낼 제품이라는 컨셉의 광고였다.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직접 매킨토시를 써본 뒤 광고를 제작했다.
애플이 1984년 1월22일 미식축구 슈퍼볼 경기 광고에서 방영한 매킨토시 광고.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제작한 광고로, 1984의 빅브러더(당시 IBM을 지칭)가 지배하는 세상을 박살낼 제품이 왔다는 걸 표현했다. 매킨토시에 승부를 건 스티브 잡스는 출시 이듬해인 1985년 매킨토시 판매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났지만, 나중에 이 해머처럼 매킨토시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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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최초 기술도 없고 상업적으로는 대실패
컴퓨터 역사에서 매킨토시만큼 큰 영향을 끼친 컴퓨터는 없다. 이전까지 컴퓨터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서 다룰 수 있던, 값비싸고 어렵고 제한된 용도를 위한 전문가들의 도구였다. 출시 당시 2499달러(약 334만원)에 판매된 매킨토시를 구매해 사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매킨토시로 인해 우리는 누구나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고 이후 스마트폰 세상을 만나게 됐다. 버지니아대 교수 시바 바이디야나탄은 ‘가디언’ 기고에서 “매킨토시는 마법처럼 보이는 컴퓨터의 대중적 시장을 만들어낸 기계”라고 표현했다. 그는 “21세기는 1984년 1월 넷째주 시작됐다”고 말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을 도입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점에서 정보기술의 혁명을 가져온 기기다. 매킨토시는 세상을 바꾼 혁신적 컴퓨터로 기록됐지만, 사실 매킨토시에 비로소 적용된 특별한 기술적 혁신도 없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다.
매킨토시는 가정용·사무용·교육용으로 개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도 아니었다. 아이콘을 눌러 조작하는 그래픽사용자환경의 첫 컴퓨터도 아니었고, 마우스를 사용하는 최초의 컴퓨터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러한 기능들을 갖춘 애플 최초의 컴퓨터도 아니었다. 1년 전인 1983년 출시된 애플 리사(Lisa)는 매킨토시가 갖춘 이들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매킨토시에 최초로 적용된 기술은 없다. 매킨토시는 가격을 리사(1만달러)의 4분의 1로 책정하고, ‘1984’ 광고처럼 컴퓨터의 혁명을 가져올 제품이라고 대대적으로 마케팅했다. 하지만 애플의 명운을 건 매킨토시는 잡스의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IBM 호환PC에 비해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크게 부족했고 여전히 비싸 팔리지 않았다. 결국 잡스는 애플의 자원을 집중하며 승부를 건 매킨토시 실패로 인해, 출시 1년 뒤인 1985년 5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축출당했다.
스티브 잡스, 매킨토시 실패로 애플서 쫓겨나
상업적 실패였지만, 매킨토시는 이후 컴퓨팅의 역사를 바꿔내고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 최고경영자로 복귀해 성공시킨 아이폰·아이패드의 모태였으며 오늘날 정보화세상의 실질적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 출시 발표회에서 애플은 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있었다고 말했다. 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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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는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최대한 단순화·직관화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해, 사용자 경험의 혁신을 가져온 제품이다. 잡스는 매킨토시에서 ‘사용자 경험’을 개발의 목표이자 동력으로 삼았고, 이후 ‘사용자 경험’은 애플 제품을 넘어 이후 모든 산업이 지향하는 제품의 최고가치와 목표로 자리잡게 됐다. 잡스는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첫 소개하는 자리에서 “애플은 늘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다섯달 뒤인 2010년 6월 아이폰4 발표 자리에서 잡스는 더 나아가 “애플은 단지 기술기업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기업이다”라고 말했다. 매킨토시가 컴퓨터 분야를 넘어 이후 모든 산업과 제품에 ‘사용자 경험’의 가치 확산을 가져온 제품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제록스 팰로알토연구소가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의 원형, 알토. 그래픽사용자환경을 적용한 컴퓨터로 시판되지 않았지만, 이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운영체제를 혁신하게 만든 모델이다. |
제록스팰로알토연구소가 개발한 그래픽사용자환경을 1979년 당시 구현한 화면이다. 이런 사용자 환경 이전에는 텍스트와 수식을 입력하는 복잡한 명령어로 컴퓨터를 작동했다. |
미국의 컴퓨터 역사학자 데이비드 그리리쉬는 매킨토시의 회로기판(메인 보드)의 독창성에 주목했다. 그리리쉬는 ‘비비시(BBC)’ 회견에서 “롬(ROM), 램(RAM), 프로세서, 입출력 등 모든 기능이 아름다운 정사각형의 작은 통합보드에 들어 있었다. 1984년 당시로서는 놀라웠다”고 말했다. 매킨토시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사용자 경험’을 최고의 목표로 삼은 애플은 결국 그 혁신의 대가를 보상받으며 세계 최고가치의 기업이 됐다.
애플컴퓨터가 매킨토시 출시 1년 전인 1983년 내놓은 리사, 그래픽사용자환경과 마우스를 채택했고 1만달러라는 고가에도 속도가 느렸다. 위키코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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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MS의 오픈AI 투자 배경에도 ‘매킨토시 효과’
사실 오픈에이아이(OpenAI)에 130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49%를 확보하고 오피스 도구에 생성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며 최대의 수혜자가 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도 스티브 잡스와 매킨토시로부터 학습한 사실과 닿아 있다. 빌 게이츠는 2023년 3월 ‘인공지능시대가 열렸다’는 글을 통해 챗지피티(챗GPT)가 자신이 1980년 제록스팰로알토연구소(PARC)에서 만난 그래픽사용자환경(GUI)만큼 혁명적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잡스가 앞선 1979년 제록스연구소의 알토(Alto) 컴퓨터에서 처음 목격한 뒤 리사와 매킨토시에 적용한 ‘그래픽사용자환경’이다.
캘리포니아주 제록스팰로알토연구소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 모델의 효시인 ‘알토’. 팰로알토/구본권 기자 |
빌 게이츠는 일상 언어로 작동하는 챗지피티를 보면서 제록스연구소의 그래픽사용자환경을 떠올린 것이다. 잡스가 매킨토시에 적용한 그래픽사용자환경이 이후 모든 기기의 표준으로 된 것처럼, 빌 게이츠는 챗지피티가 보여준 사용자경험이 미래의 표준적 기술 작동법이 될 것이라는 걸 예감한 것이다.
40년 전 출시된 매킨토시가 2024년 생성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열풍의 배경을 알려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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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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