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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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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김종필·안철수도 꿈꿨던 '제3신당'… '낙준 연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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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김종필·안철수도...제3신당 역사]
정주영 현대 회장, 대선 노려 신당 창당
자민련, 1996년 총선서 50석 확보 성공
국민의당, 2016년 총선 38석 확보 돌풍
4월 총선 앞두고 이준석·이낙연 등 탈당
'제3지대 빅텐트' 성공은 기성 정치 탈피
한국일보

이준석(왼쪽)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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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제3지대를 모색하는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과거 제3신당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2년 통일국민당(국민당), 1996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2016년 국민의당 등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지렛대 삼아 거대 양당 구도를 깨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빚어진 계파 갈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양당에 흡수되는 한계를 드러냈다. 과거 사례를 토대로 제3신당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봤다.

정주영·김종필·안철수...인물 중심 창당


과거 제3신당들은 강력한 인물이 구심이 돼 결집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 도전을 위해 같은 해 2월 국민당을 창당했다. 창당 한 달 만에 열린 14대 총선에서 31석을 얻어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정 회장이 패배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영삼 정권(1993~1998년)에서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정 회장은 199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국민당도 쇠락했다. 국민당은 창당 2년 반 만인 1994년 7월 당시 박찬종 대표의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면서 사라졌다.

1995년 3월 창당한 자민련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주도했다. 김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내 군부세력 축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탈당했다. 김 전 총리가 이끄는 자민련은 창당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해 제3신당 중 역대 총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국일보

김대중(왼쪽)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1997년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양당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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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의 성공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이어졌다.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는 1997년 15대 대선 승리를 위해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손을 맞잡았다. 둘은 공동 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 합의를 조건으로 연합했다. 김대중 당시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김종필 당시 총재가 초대 국무총리가 됐다.

하지만 내각제 개헌과 대북 정책 등으로 갈등을 겪으면서 둘은 결별했다. 자민련은 급격하게 세가 줄었고, 2004년 총선에서 4석을 얻어 참패했다. 당시 총선 참패 책임으로 김 전 총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해체 기로에 놓인 자민련은 2006년 4월 한나라당과 통합됐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탈당해 2016년 창당한 국민의당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안 의원은 총선 승리를 동력 삼아 2017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당도 힘을 잃고 2018년 2월 바른정당과 합당하면서 해체됐다.

열린우리당·바른정당...계파 따라 이합집산


거대 양당에서 당내 갈등에 따른 탈당과 창당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2003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정동영·김한길·김근태·정세균·천정배·임종석 등 의원들은 같은 해 11월 새천년민주당 쇄신을 주장하며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사상 초유의 미니 여당으로 출범한 열린우리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그해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해 거대 야당이 됐다. 하지만 2004년 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하면서 당내 결집력이 급속히 약화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 행렬이 이어지면서 같은 해 8월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결국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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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7일 국회에서 김영춘(왼쪽부터) 안영근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한나라당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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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도 당내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했다.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으로 탄핵되자 탄핵안에 찬성한 비박계 김무성·유승민·남경필·이혜훈 의원 등 29명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이들은 이듬해 2017년 1월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대한민국 보수정당 사상 최대 규모의 분리 독립 사례다. 2017년 대선 후보로 유승민 후보를 내세웠지만, 이에 반발한 의원 13명이 집단 탈당하고, 12명은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현역 의원 20명으로 간신히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하던 바른정당은 2018년 국민의당과 합당하면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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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맨 윗줄 왼쪽 세 번째) 유승민(두 번째 줄 왼쪽 네 번째)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탈당파 의원 29명이 2016년 12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혁보수신당 분당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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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세력...제3지대 빅텐트 형성할까

한국일보

미래대연합 창당을 준비 중인 전·현직 의원들이 12일 국회 정론관에 입장하고 있다. 김종민(왼쪽부터) 의원, 이원욱 의원,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 조응천 의원.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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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을 앞두고 6개 세력이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개혁신당'과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 민주당에서 탈당한 김종민·조응천·이원욱 의원의 '미래대연합', 정의당 출신 박원석 전 의원의 '당신과함께',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희망',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새로운선택' 등이다.

관건은 이들이 한데 뭉치는 '제3지대 빅텐트' 성사 여부다. 이낙연 전 대표는 12일 MBC 라디오에서 "(이준석 전 대표는) 청년 정치를 상징하는 분이 돼 있고, 전 외람되지만 경험 많은 정치인의 대표 격으로 돼 있지 않냐"면서 "세대통합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이날 KBS 라디오에서 "무턱대고 합치자는 건 대중도 지지율로 화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최대공약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미래대연합 창당 선언식에 박원석 전 의원과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도 참석해 연대 가능성을 높였다.

제3지대 성공 여부는 인물 중심의 화학적 결합을 뛰어넘는 새 정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과거 신당을 창당하다가도 특정 인물 또는 세력에 반대하기 위해 다시 뭉치길 반복해왔다"며 "다만 제3신당이 생기면서 양당에도 변화를 가져와 정치생태계가 순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3지대를 형성해 총선에서 표를 얻더라도 기성 정치와 차별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다음 선거를 앞두고 거대 양당과 합당하는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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