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11살에 온 조현병…폐쇄병동 입원날 “엄마, 엄마, 엄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쿵, 띠리릭. 2008년 4월2일, 폐쇄병동의 문이 닫혔다. 아이는 문안으로, 나는 문밖에 있다. 여기는 소아정신과 병동 앞이다. 아이는 몸무게 3.47㎏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감기 말고는 아픈 적이 없었으며, 보통 키에 보통 체격, 책읽기를 좋아하고, 일기를 멋지게 쓰고, 친구들과 축구 하는 걸 좋아하는 만 11살 4개월 된 아이가 소아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소아정신과라니, 그것도 격리병동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다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아이를 더 사랑해주지 않아서. 내가 일한다고 바쁘게 살아서.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백혈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냥 병에 걸린 거예요.” 주치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병에 걸린 거라고. 아주 조금 위안이 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냥 병에 걸린 거예요”





2008년 2월, 겨울방학이었다. 귀가했더니 아이는 온 집안의 블라인드를 다 내려놓고, 커튼을 다 치고, 소파에 웅크려 떨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는 나쁜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 앞에 모여 있다고 했다. 아이를 위협한다고 했다. 자꾸 나오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엄마 아빠를 해칠 거라고 했다. 뛰어나갔다. 상가에 가봤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았다. 어디에도 아이를, 우리 가족을 위협할 만한 나쁜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귀를 검사하고, 청력검사를 했다.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튿날, 동네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엄마의 우울증이 아이에게 전이됐다”고 했다. 나는 우울감은 있었지만 우울증은 아니었다. 그날부터 인터넷 검색에 매달렸다. 불안, 환청, 정신과, 정신병, 이런 단어를 검색했다. 손이 떨렸다.



며칠 뒤, 정신분석 전문가를 만났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자신이 없다고 했다.



최면술을 한다는 의사를 만났다. 재미있는 사례라고 했다. 치료해보자고 했다. 신뢰할 수 없었다.



한의학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의사를 만났다. 몸 안의 독소를 빼야 한다고, 열이 뇌로 올라가서 생긴 증상이라고 했다. 한약을 지어왔다. 아이는 쓴 한약을 꿀꺽꿀꺽 마셨다.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참고 먹었다. 그리고 사흘 내내 설사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귀신이 들린 거라고 했다.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듣지 않았다.



결국 소아정신과 개인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급성 정신증 같다고. 인지와 사실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정신적 증상이라고 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조현병, 망상장애, 심한 기분장애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데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엄마, 내가 미치고 있는 건가요?”





의사는 희귀한 사례라고 했다. 건강하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자란 아이가 이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조현병이 100명 중 1명꼴로 흔하지만, 소아조현병은 1만 명 중 1명꼴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왜 이런 형벌이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왔을까? 도대체 왜? 왜?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우리는 당장 입원했다. 개방병동이었다. 보호자와 함께 있는 환자는 없었지만, 아이는 소아환자여서 보호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됐다. 조울증, 조현병,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양한 어른 환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2인실에 배정됐다. 바로 옆 병상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본인이 의사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망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함께 생활해보니 의사가 맞는 것 같았다. 의사라고 병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또 병동에는 부부 환자도 있었다. 여자 병실과 남자 병실에 각각 입원한 조울증 환자였다. 산책 시간에는 나란히 병원 복도를 걸었고, 프로그램을 할 때도 함께 했다. 다정한 커플이었다.



며칠 뒤 아이는 다인실로 옮겼다. 정밀검사는 계속됐다. 뇌파검사,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심리검사, 심전도 검사, 사회환경 조사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치료 약물이 아이의 증상을 따라잡지 못했다.



“엄마, 내가 미치고 있는 건가요?” 병실 한쪽 벽에 서서 아이는 말했다. 아이는 시시각각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분리불안도 생겼다. 화장실 가는 짧은 시간에도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누군가가 엄마를 해칠 거라고 했다. 결국 화장실도 같이 갔다. 아이는 24시간 내내 엄마 손을 붙잡고 있었다.





소중한 엄마를 지키고 싶은, 진짜 너의 마음을 안단다





어느 순간, 아이는 엄마가 가짜라고 했다. 진짜 엄마를 없애러 온 가짜라는 것이다. 겉모습은 똑같지만 나쁜 사람들이 보낸 가짜 엄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물리쳐야 하는 악당. 그 망상이 들 때는 가짜 엄마에게 욕하고, 가짜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니까.



응급상황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카그라증후군(Capgras syndrome)이었다. 우리는 발병 두 달 만에 대학병원 소아정신병동,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조현병과의 동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여정에 발을 내디뎠다.



윤서 여성학 박사







*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고 있는 28살 청년 ‘나무씨’(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입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채 성장하고 살아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질문을 던지고 질병과 공존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림을 그린 이지안은 <천장의 무늬> 필자(이다울에서 개명)로 조현병을 앓는 나무씨의 시점에서 그림을 그릴 예정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21 기사 더 보기 ▶️ h21.hani.co.kr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