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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됐다더니 버젓이 걸어… 산재 부정수급액 6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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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산재 카르텔" 가능성 조사, 부조리 발본색원”
노동계 "일부 사례 확대해석, 사회 안정망 흔들어"
한국일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상보험제도 특정감사 중간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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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근로자 A씨는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며 1급 장해 판정을 받고 산재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감사에서 A씨가 전동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모습이 확인됐다.

# 병원 직원 B씨는 집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하고도 병원 관계자와 짜고 사무실에서 다쳤다며 산재를 신청했다. B씨는 산재가 확정돼 보험급여 5,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20일 고용노동부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한 '산재보험 특정감사'에서 밝혀낸 부정수급 사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과 관리를 허술하게 해 산재 급여가 줄줄 새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산재 카르텔’까지 언급하며 제도를 손보겠다는 입장인데, 노동계는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흔들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달 대통령실이 “전 정부(문재인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히며 본격화했다. 이날은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고용부는 부정수급 의심사례 320건 중 178건을 조사해 117건의 문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부정수급 금액은 60억3,100만 원에 달한다. 고용부는 산재 요양환자 4만9,000여 명 가운데 ‘6개월 이상’ 요양환자가 47.6%에 달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진료계획서 연장 승인율’이 99%에 달하는 점도 문제 삼았다.

고용부는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의 도덕적 해이를 의심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치료 장기화'와 관련해 “재해자 입장에서는 산재 승인이 될 경우 경제적 보상이 상당해 직장에 복귀하기보다 요양 기간을 늘리고자 하는 유인이 훨씬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병원이 손쉽게 치료 기간을 늘려 주고 근로복지공단이 관리를 느슨하게 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지난달 마무리하기로 계획했던 감사를 한 달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각종 부정 사례와 제도상 미비점은 산재기금의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져 미래세대의 부담이 될 것”이라며 “산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해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산재 카르텔”, “나이롱환자” 등의 단어도 사용했다. 다만 구체적인 산재 카르텔 사례는 공개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산재 승인 건수가 매년 13만 건에 달하는데 117건의 부정 사례를 들어 전체 제도를 수술하겠다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부정수급 문제는 특별한 게 아니라 매년 적발돼 왔던 것”이라며 “부정수급이 문제라면 근로복지공단의 부정수급예방 부서 인력을 확충하고, 재활보상 부서의 능력을 제고해 부정수급을 최소화하면 된다”고 했다.

노동자가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10배 가까이 높지만 산재 인정률은 더 낮거나 유사한 수준”이라며 “정부가 부정수급 문제만 강조하면서 산재 신청과 승인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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