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연금과 보험

‘국민연금 1000조 시대’ 지속 가능하려면 10년 후부터 절벽…최대과제는 수익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이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 연기금 중 적립금 1000조원 시대에 진입한건 국민연금이 세 번째다.

하지만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예정된 만큼 장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수익률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성숙기에 접어든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률 방어를 위해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투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민간 투자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기금 자산은 올해 9월 중순 기준으로 기금 적립금 1001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최초로 1000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기금 자산은 지난 2015년 9월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 이후 8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적립금 규모가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2162조원)의 50%에 육박할 정도로 초대형 기금으로 성장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적립금 규모는 글로벌 연기금들과 비교해 봐도 밀리지 않는다. 현재 일본의 공적연금(GPIF·1987조원)과 노르웨이 국부펀드(GPF·1588조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준이다.

1988년 설정 후 지난해까지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누적 수익금은 451조3000억원에 달한다. 누적 수익률은 5.11%다. 최근 5년 기준 국민연금 수익률은 4.2%로 미국 캐나다연금투자(CPPI·8.1%)보다 낮지만 일본 GPIF(3.3%)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역임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는 “국민연금 1000조원 시대 진입은 연금의 지속성 강화 및 글로벌 주요 연기금으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세계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기금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연금 개혁을 지속해 ‘1조달러’를 새로운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 고갈은 2055년 예상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내 주식 외 중장기적으로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를 확대하면서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 중순 기준 수익률이 10%를 넘어서며 지난해 저조했던 수익률(-8.22%)을 완전히 회복했다.

해외주식 수익률 제고 성과
특히 국민연금은 미국 주식 투자를 통해서 큰 수익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분기보고서 13F(1억달러 이상 운용사 보유 지분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2분기 소위 ‘빅테크’로 불리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등 대형 기술주 비중을 대폭 늘리며 수익률 제고에 나섰다. 그 밖에 국민연금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약세장에서도 주가의 하방 지지력이 탄탄한 경기민감주, 헬스케어주 등 가치주 비중도 늘렸다.

양호한 시장 수익률을 거두면서 올해 2분기 기준 국민연금의 미국 주식 보유 가치는 619억9500만달러(약 83조13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직전 분기 보유 가치인 549억1900만달러(약 73조6400억원) 대비 약 13% 증가한 것이다. 팬데믹 이후 대세 상승장 때 기록한 2021년 4분기 시장 가치(573억243만달러)를 이미 넘어선 셈이다. 국민연금의 미국 주식 포트폴리오 시장 가치는 2022년 3분기 479억2414만달러(약 64조2600억원)로 바닥을 찍은 후 4개 분기 연속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액이 성장세를 보이곤 있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위험자산, 대체 투자 규모를 늘리고,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0조원 시대를 맞이해 축포를 터트리기엔 당장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해 2055년께 기금이 고갈될 것이란 ‘적신호’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근본적으론 보험료율 인상이 거론되지만, 수익률 제고 또한 필수다. 올해 3월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보험료율 9%와 65세부터 연금 수급하는 조건을 유지한다면 국민연금기금은 2040년 1755조원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금 규모는 차츰 줄어 2055년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거대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야 30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미뤄지고 보험료를 2%포인트 인상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만 높여도 기금 고갈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금 규모 증가에 따른 운용 제약과 저성장 기조에 따른 수익률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선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중요하다.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CIO)는 국민연금 연차보고서에서 “기금운용본부는 운용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해외 투자와 대체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투자자산 다각화와 투자전략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며 “해외 주식 액티브 전략을 직접운용으로 확대하기 위해 해외 주식 리서치팀을 신설해 수익 원천을 다변화하고 자산 배분의 유연성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최근 국민연금은 부동산, 인프라자산, 사모주식, 헤지펀드 같은 대체투자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통적 투자자산과는 상관관계가 낮고 전통적 투자에 비해 규제가 덜한 자산들이다. 레버리지, 파생상품을 활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위험·고수익 투자 수단으로 꼽힌다. 다만 전통적인 투자자산 위험 관리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문제 때문에 투자 운용자의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 특징이다.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해외 연기금들과 유사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최근 10년 평균 위험자산 비중은 46.4%에 불과했다. CPPI,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의 평균 위험자산 비중은 각각 74.5%, 71.1%에 달한다.

올해 5월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이수철 NH투자증권 운용사업부 대표는 “투자 위험을 더 감당하는 게 장기 재정 안정성에 효익을 준다면 리스크 대비 이익을 분석해야 한다”며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 10~15년이 그 효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국민연금은 부동산, 사모대출 등 대체투자 분야 비중도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약정 금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250조원을 돌파했지만, 글로벌 수준에 맞게 증가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국민연금의 투자 방향을 설계하는 투자정책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삼영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고금리로 대출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모대출은 은행권을 대신해 자금을 공급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이라며 “국민연금도 사모대출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규모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투자 전문가를 유치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국민연금 인력 규모는 세계 3대 연기금이라는 타이틀에 아직 걸맞지 않은 수준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직 규모는 321명으로 정원(365명)에 비해 40명가량이 부족한 상태다.

국민연금이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대체자산 약 285조원을 운용하고 있으며 운용 인력만 500명이 넘는다. 1인당 운용 규모는 약 600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146조2000억원으로, 운용 인력이 96명에 그쳤다. 1인당 운용 규모는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캐나다의 약 3배 정도이다.

김수이 CPPIB 글로벌 PE 대표는 “충분한 보상 수준은 인재를 유치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필수 요소”라며 “동시에 연금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자산 다각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금융의 경쟁력은 사람과 네트워크에서 나온다”며 “주요 세계 연기금들의 인력은 2000여명 수준인 데 반해 국민연금은 200~300명에 불과하다. 경쟁력 있는 우수 인력들을 적극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버넌스 개선도 필수적이다. 그동안 업계에선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해왔다. 기금운용본부를 하나의 자산운용사로 보고 전문가 중심의 운용 기조를 강화하고자 의사결정 권한이 위임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독립성·전문성 강화해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매년 앞으로 5년 후의 자산배분 전략을 최종 수립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당연직 위원으로 주요 정부 부처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참여한다. 해외 6대 연기금 중 기금 운용 의사결정기구가 정부에 치우친 것은 국민연금이 사실상 유일하다. 또 가입자를 대표하기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 지역가입자대표가 위원으로 위촉되는데 이 역시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회 토론회에서 박영규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 확립이나 적절한 인사 조직, 성과보상 체계가 만들어져야 우수한 매니저들이 기금운용본부에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해 공사화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별도 상설기구로 만들어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연금의 제도 운영과 기금 운용 기능을 분리해 운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연금투자는 1998년 별도 공사인 CPPIB를 설립해 의장을 포함해 이사회 전원이 민간의 투자·금융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과거 1988년 국민연금기금이 만들어진 이후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설립되기 전까지 약 10년간 기금 운용은 한 부서였던 기금운용부 차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적립금 대부분은 공공자금으로 활용하거나 채권 위주로 운용됐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가 설치되면서 공공 부문과 금융 부문으로 나눠 운용하던 방식에서 자산 대부분을 금융 부문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차창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