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장제원이 내려놨다…'용의 칼날' 먼저 안 뽑으면 맞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the300][종진's 종소리]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머니투데이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총선 불출마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3.12.12.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장제원 의원이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정권교체를 이루고 지금까지 막전막후에서 온갖 일을 도맡았던 그가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12일 공식 선언했다. 당선인 비서실장 중도 사퇴를 끝으로 이렇다 할 공직을 맡지 않던 장 의원은 자신의 표현대로 가지고 있는 '마지막'을 내놨다. 친윤(친윤석열)의 상징으로서 비난도 견제도 온몸으로 받던 장 의원의 불출마 씨앗이 몰고 올 파장은 예단하기 어렵다. 본인 스스로 "버려짐이 아니라 뿌려짐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총선은 딱 120일 남았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제원은 절대 불출마하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상당했다. 직선적 성품으로 마음먹은 건 밀어붙이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선친 때부터 다지고 쏟아온 부산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해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오직 저를 믿고 한결같이 응원해 주신 사상구민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냈다. 장 의원은 전날 늦은 오후 선친에게 아뢰는 형식을 빌려 "잠시 멈추려 한다"며 불출마를 전격 시사하면서 성경을 인용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기독인들이 용기를 얻을 때 의지하는 대표적 말씀이다.

#1948년 5월31일 오전 10시. 독립 민주국가 출범을 앞두고 제헌국회가 처음 모였다. 역사적인 이 자리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의 제안으로 198명의 민족 대표 전원은 감사 기도로 대한민국의 첫 회의를 시작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목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윤영 의원이 대표로 나와 남북통일부터 세계평화까지 염원하는 기도를 올린다. 75년이 지난 오늘날 읽어봐도 당시의 표현대로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감동적이다.

기도문에는 국회의원의 자질이 적시돼있다.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강구하나이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국회의원들이 처음 탄생하는 순간 신께 빌었던 내용이다.

지(智), 인(仁), 용(勇)은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에 나오는 덕목이다. 좋은 정치를 다루는 중용 제20장에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리를 행하기 위해 자신을 닦을 덕목으로 이 세 가지를 꼽는다.

배우고 익혀 아는 건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적잖은 이들이 바른 성품을 갖추고 옳은 일을 행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뜻을 펼쳐간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늘 용(勇)은 정치인에게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게 용기지만 그래서 힘들다. 자신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과 희생, 결단이 자신을 향할 때는 누구나 주저할 수밖에 없다.

머니투데이

[암스테르담=뉴시스] 조수정 기자 =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2.12.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국민의힘과 정부 관계자들도 누구나 이번 총선에 윤석열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는 사실을 안다. 총선에서 패배하는 순간 이 정부는 임기 끝까지 사실상 '식물 정부'가 된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가 이어지는 첫 정권으로서 국정과제 이행은 물 건너간다.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흔히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역대 어느 정권도 대통령 취임 이후에 최고지도자가 기존 스타일에서 달라지지 못했다.(혹은 안했다.) 억지로 바꾸려다가 부작용이 날 수도 있다.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살리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선이었다.

정책으로 승부를 보기도 어렵다. 총선을 앞두고 정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돈을 풀어야 한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이 정부에서는 정책으로 지지율을 당장 끌어올릴 수가 없다.

남은 답은 '사람'밖에 없다. 공천 과정에서 어떻게든 잡음을 줄이고 괜찮은 인물을 국민 앞에 선보여야 한다. 신선하면서도 공감을 사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때론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어느 때보다 용(勇)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개인에게 잘못이 있고 없고 책임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다. 여권에서 말하듯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공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제원 의원이 먼저 자신을 던졌다. 윤심을 내세웠건 내부 공격을 했건 간에 어떤 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먼저 깨닫고 용기를 내지 못하면 민심의 심판을 받는다. 용기의 칼날을 스스로 뽑지 않으면 부메랑을 맞는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