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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아내와 생이별…가난한 나라라고 위법하게 내쫓는게 법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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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유학생 강제 출국

한국에 홀로 남겨진 우즈베크 남편


한겨레

우즈베키스탄 출신 쇼키로프 에르킨존(왼쪽)과 아내 쇼키로바 오이디노이.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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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출신 쇼키로프 에르킨존(30)은 한신대 어학당에 다니던 아내 쇼키로바 오이디노이(21)와 생이별을 했다. 아내가 학교 쪽 압박에 못 이겨 우즈베키스탄행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이다. 에르킨존은 “이번 일은 단순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당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에르킨존은 2017년 처음 한국에 왔다. 경상국립대에서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2020년 학위를 취득한 그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일을 하다가 구직 비자를 받아 지난 8월 한국에 다시 왔다. 전공 관련 일자리를 찾으며 박사과정에 지원해 입학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 10월 결혼한 아내 역시 지난 9월 조건부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아내 역시 한국어를 배운 뒤 학위를 따서 함께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아내가 사라진 건 11월27일이다. 한신대가 학생들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려보낸 날이다. 갑작스럽게 아내와 연락이 두절된 에르킨존은 아내의 학교 친구들을 통해 행방을 수소문했고, 아내가 인천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깜짝 놀란 그는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5시20분쯤 공항에 도착했지만, 아내가 탄 비행기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에르킨존은 “떠나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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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오이디노이는 한국 체류에 필요한 은행 계좌 잔고(1천만원)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신대에서 제적됐다. 그는 7월3일부터 10월5일까지 ‘유학 경비’ 명목의 은행 계좌 잔고를 규정대로 유지했지만, 조사 당시인 11월6일에는 이 돈을 인출한 상태였다. 에르킨존은 “학교는 우리에게 ‘잔고 3개월 유지’를 강조했는데, 학생들은 이 돈이 한국에서 지내면서 일이 생겼을 때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인출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우리를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 하는 외국인’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겨레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던 당시의 쇼키로프 에르킨존. 본인 제공


에르킨존은 한국이 법치주의 국가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에르킨존은 “한국에는 법이 있다. 은행 잔고가 부족하면 규정을 통보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하면 된다. 계좌 예치금을 인출했다는 이유로 사전 통보도 없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학교가 유학생을 공항으로 데려가 강제출국시키는 게 이 나라의 법치주의냐”고 했다. 한겨레가 확보한 법무부의 ‘외국인 유학생 사증발급 및 체류관리 지침’을 보면 유학 경비는 “체류 허가 기간 동안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단기 입출금 등으로 (잔고 증명서가) 발행된 경우 심사 시 시차를 두어 잔고 보유 여부를 재확인할 수 있음”이라고만 되어 있다.

에르킨존은 “외국인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를 알고 있다. 이민과 관련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외국인의 위법행위로부터 사회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외국인의 위법행위를 막겠다는 정부가 대학의 위법행위를 조장하고 방치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법치주의 국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부의 사진을 공개하며 에르킨존은 고민했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과 아내를 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5년 동안 나를 잘 대해줬다. 나는 이곳에서 먹고, 교육받고, 행복했다. 내가 진심으로 한국을 아끼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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