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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 (수)

환한 南∙깜깜한 北, 어디 택할래…AI전쟁에 소환된 한반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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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개발 예찬론자로 유명한 베프 제조스가 10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한반도 위성사진. 밤에 환한 불이 켜진 한국 전역을 ‘e/acc’로 표기하고 어두운 북한 전역을 ‘Decel’로 적은 한반도 야경 사진이다. 그러면서 "(기술개발이) 가속화된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한 주"라고 달았다. AI 기술을 가속화하면(e/acc) 한국처럼 빛나고, 이를 막으면(Decel) 북한처럼 미래가 컴컴해진다는 비유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베프 제조스는 AI 스타트업 익스트로픽 창립자인 기욤 베르동이다. 사진 X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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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개발론과 규제론 간의 ‘전쟁’에 한반도가 소환됐다. 대표적인 AI 개발 예찬론자인 ‘베프 제조스’는 1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에 “SK(South Koreaㆍ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설명과 함께 한반도 야경 사진을 올렸다. 그는 밝은 불빛으로 빛나는 한국 쪽엔 ‘e/acc’, 칠흑같이 깜깜한 북한엔 ‘Decel’이라고 적었다.

암호를 연상케 하는 낯선 영어 약자의 뜻은 무엇일까. 신조어 e/acc는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의 줄임말이다. 브레이크와 규제 없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AI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변한다. 즉 AI 개발 속도전이다. 반대로 Decel은 ‘감속주의(Decelerationism)'를 줄인 신조어다. Decel은 AI가 가져올지 모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뜻한다. 즉 AI 규제론이자 속도조절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베프 제조스가 올린 한반도 위성 사진은 AI 개발을 가속화하면 한국처럼 밝은 미래가, 이를 막으면 북한처럼 어두컴컴한 미래가 온다는 비유다. 그는 사진에 “(기술개발이) 가속화된(accelerated)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한 주”란 문구도 달았다. IT를 비롯해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한국을 긍정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AI를 둘러싼 개발론과 규제론의 충돌엔 AI와 인간의 미래를 바라보는 철학과 신념이 담겨 있다. 그래서 거의 종교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미 뉴욕타임스(NYT)가 그렇게 표현했다. NYT는 10일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종교전쟁 수준의 대립이 바로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간의 싸움”이라고 전했다. AI 개발론은 기술이 미래의 진보를 이끈다는 기술 낙관주의가 깔려있다. 반대로 규제론자들은 AI 개발의 속도 조절이 안되면 인류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담고 있다.



샘 알트먼 복귀에 “AI 파멸론자들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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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 공동 창업자인 샘 알트먼(왼쪽) CEO와 일리야 수츠케버 수석 사이언티스트. 일러스트=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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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종교전쟁의 충돌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지난달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서 벌어졌던 ‘실패한 쿠데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AI 개발론자인 샘 알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이사회가 해고했다가 결국 뒤집기를 당했다.

당초 샘 알트먼 해임에 가세한 오픈AI의 공동창업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AI의 안전성 분야 연구에 집중해 온 인물이다. AI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선한 AI’를 주창해온 수츠케버의 알트먼 축출 시도는 오픈AI의 임직원 다수가 ‘알트먼과 함께 하겠다’며 동반 사퇴를 선언하자 실패했다. 이를 놓고 IT 분야 저명 평론가인 베네딕트 에번스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AI 파멸론자들(AI Doomers)의 패배”라고 평했다.

이후 개발론 대 규제론의 논쟁이 커지면서 ‘효과적 가속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개념화한 베프 제조스의 정체도 최근 드러났다. 포브스지는 최근 “실리콘밸리를 휩쓸고 있는 e/acc 운동을 주도하는 도발적인 X 계정(베프 제조스)의 배후에는 AI 스타트업 익스트로픽의 창립자이자 전직 구글 엔지니어인 기욤 베르동이 있다”며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물리학자인 31세의 베르동은 올 초 X에 “많은 제 친구들이 강력한 기술을 연구 중인데 비난을 받아 우울해 한다. 엔지니어가 영웅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자고 생각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기술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신의 AI 개발론을 e/acc로 표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 업체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등 유명 인사들이 “효과적인 가속주의를 믿는다”며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e/acc를 달았다. 샘 알트먼도 베프 제조스의 글에 “당신은 나를 앞설 수 없다”(You cannot outaccelerate me)는 농담 섞인 댓글을 올리며 지지를 표했다. NYT는 이같은 입장이 암호화폐, 핵융합 분야 등으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 낙관론에 “위험한 이데올로기”



하지만 반대 기류도 역시 커지고 있다. AI가 인류를 추월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AI 안전을 추구하는 단체 ‘스테이크아웃.AI’(StakeOut.AI) 소장으로 있는 피터 S 박 MIT 연구원은 e/acc 운동에 대해 “인류를 AI로 대체하려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이데올로기”라고 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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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규제법 최종안을 검토하고 있는 유럽연합(EU) 당국자들. 사진 티에리 브레튼 유럽집행위원 X(옛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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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AI 개발을 촉진하면서 다른 나라의 기술 개발을 견제하기 위한 복합적 의도에서 각국 정부와 기관의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AI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같은 날 주요 7개국(G7)도 AI 규제를 위한 첫 국제행동강령에 합의했다. 지난 8일 유럽연합(EU)은 AI의 위험성을 분류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AI 기술 규제법 합의안을 내놨다. 유엔(UN)도 내년 8월까지는 AI 규제 방향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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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EU의 AI 규제 동향 그래픽 이미지.


일각에선 기술 낙관론과 파멸론의 충돌을 극복하자는 제3의 절충론도 나온다. 암호화폐 이더리움(ETH)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AI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위험성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취지로 ‘d/acc’(defenseㆍdecentralizationㆍdemocracyㆍdifferential 등의 앞글자 ‘d’ accelerationism)를 제안했다.

NYT는 이를 놓고 “확실한 것은 ‘AI 분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AI를 놓고 기술이 인간을 진보시킬지, 노예로 만들지를 놓고 충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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