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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8 (수)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반 토막 난 전세계 北 외교 공관… 그들은 우회로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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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100국서 현재 46곳… 유엔 제재로 외화벌이 한계

중·러 등거리서 무게중심 러시아… 김정은·푸틴 더욱 밀착

니카라과 등 서방 감시 적고 가상화폐 등 해킹 가능한 국가로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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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탈북자 K는 재외공관 근무 시절 주업무가 대사관 운영 경비 마련과 주석궁 충성 선물 조달이었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던 필자에게 고백하였다. 2000년대 중반 전 세계 60국에 북한 외교 공관이 개설되어 있었다. 평양 외무성에서 보내오는 예산은 전체 경비의 절반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경비는 현지에서 조달하였다. 이탈리아 대사관 등은 김씨 일가의 생활용품과 사치품을 매달 컨테이너에 실어 남포항으로 보내는 특수 과업을 수행했다. 경비를 조달하느라 공관원들은 허리가 휘었다. 합법과 불법적인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칭 외화벌이에 나섰다.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서 면세 벤츠 자동차를 외교관용으로 구매하여 3개월 만에 시중 가격으로 되파는 수법은 약과다. 외교 시설을 불법으로 임대하고 세관을 무사 통과하는 외교 행낭을 활용하여 코뿔소 뿔 등 수상한 물자 거래에 나섰다. 외교관 여권을 활용하여 담배와 코냑, 금괴와 달러 뭉치, 보석 등의 불법 거래에도 관여하였다. 외교관인지 밀매꾼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평양 외무성은 군 및 보위부 등과 손잡고 마약과 무기 거래 등 대담한 외화벌이에 나서기도 한다.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범죄, 테러 조직 및 일부 독재자와 비밀 거래를 하였다. 1994년 당시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였던 장승길은 무기 거래가 핵심 업무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중동 미사일 판매 총책이었던 장승길을 주시하였고, 장승길은 미국에 망명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북한이 경제난 속에서도 전 세계에 공관을 유지했던 이유는 1991년 유엔 남북한 동시 가입 전후로 국제 무대에서 남북한 표 대결 때문이었다. 북한은 1970년대 비동맹 세력의 지원을 받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안 된다’며 단독 유엔 가입을 추진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무상 원조를 약속하며 지지를 확보하는 데 국력을 쏟았다.

우리 정부도 1975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가봉의 봉고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하는 등 대응 외교를 전개했다. 남북한이 각각 한반도 유일 합법 국가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우방 국가 확보에 주력하였다. 남북한 모두 자국과만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에 주력하던 시기라 외교 수요가 크지 않은 국가들까지 공관을 설치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전개했다. 국제 무대에서 치열한 남북한 경쟁 구도는 한·소 수교(1990) 및 한·중 수교(1992) 이후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완되었다.

159국과 수교한 북한은 최근 51년간 외교 관계를 이어온 우간다와 앙골라, 기니, 세네갈에 이어 스페인, 방글라데시, 네팔 등 최대 10개 지역에서 외교 공관의 방을 빼고 있다. 대사관 유지 국가는 46국 내외로, 과거 1980년대 최대 100여 국가와 비교하여 반 토막 수준이다. 향후 더욱 축소될 수 있다. 북한 외무성은 외교 역량의 효율적 재배치라고 밝혔지만 대체 신규 공관을 단기에 개설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북한은 전방위 외교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주체 균형 외교를 내세운 평양 외무성은 최근 들어 중·러 등거리(等距離) 전술에서 모스크바에 무게중심을 두는 전술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 푸틴과 김정은 정상회담 이전에 평양은 이미 6000억원 상당 포탄을 담은 2000여 개 컨테이너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선적시켰다. 크렘린궁의 러·북 무기 거래 부인에도 지난달 중순 러시아 텔레그램에 “북한 다중 로켓 발사기(MRL) 사거리 연장 포탄 지원 감사” 동영상이 올라왔다. 러시아 기술진이 평양을 방문하여 밀담을 나누더니 2차례 실패했던 정찰 군사위성 발사에 성공하였다. 든든한 큰 형님의 지원을 받아 무기 개발에 날개를 달았다. 유엔에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와 연합하여 대북 제재 채택을 저지하는 반미(反美) 외교를 모색하고 있다.

다음은 경제난과 유엔 제재에 따라 공관 유지 효용성이 떨어진 것이 요인이다.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발효된 유엔 안보리 제재안 11건은 북한의 불법 무역 및 외교 공관의 탈법 거래를 막았다. 중·러가 교묘하게 제재를 피하면서 거래에 나서지만 대놓고 위반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19년 2월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노딜 이후 대북 압박은 촘촘해졌다. 외교 공관들은 임차료는 물론 운용 경비 조달이 어려워졌다. 아프리카 주재 공관들의 동상 제작이나 무기 수출, 의료 인력 송출 등을 통한 외화벌이들이 일부 차단되었다. 공관의 자력갱생 운영이 한계에 부딪혔다.

마지막으로 외교관들의 탈북 차단도 중요한 이유다. 이미 유럽과 동남아 국가 주재 북한 고위급 외교관들의 탈북 사례가 빈발하였다. 과거와 달리 공관 차석 대사급으로 평양 고위층과 연결된 외교관들이 탈북하는 사례는 북한 보위부를 긴장시켰다. 북한 외교관들은 자녀 중 하나를 평양에 인질로 남겨 놓고 해외로 나오는데 일부 고위층과 연결된 힘 있는(?) 외교관들은 이러한 규정에서 예외다. 가족이 모두 해외로 나온 외교관들은 국제 정세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언제든지 탈북할 수 있다.

향후 북한은 탈법 행위가 가능하고 해킹이 용이한 국가에 공관을 설치할 것이다. 중미의 니카라과와 같이 서방의 감시가 덜하고 러시아와 밀착되어 불법 거래로 크게 ‘한탕’할 수 있는 지역이다. 가상화폐 해킹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북한 사이버 범죄는 추적이 가능한 물리적인 외교 공간보다는 은밀한 온라인 지역을 모색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외교 수요 증가에 따라 향후 공관 12곳을 신설할 방침이다. 북한은 공관을 축소하고 우리는 확대할 방침이니 격세지감이다. 비록 국력 경쟁은 끝났지만 최근 평양이 ‘큰 형님’ 러시아에 매달리는 군사 결탁 외교는 새로운 동북아의 안보 위협 요인이다. 공관 수를 줄이는 대신 확실하게 ‘뒷배’를 봐주는 모스크바-평양 커넥션은 악마의 거래가 될 수 있다. 6·25 남침 직전인 1950년 초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에게 남침 무기를 애걸복걸하던 김일성의 행태가 오버랩되는 이유다. 73년 전 기시감(旣視感)이 떠오르는 북한 외교는 과거와는 다른 엄중한 도전이다. 평양이 외교 공관을 철수하는 것은 상황 종료가 아니라 마약 유통 조직이 단속을 피해 새로운 우회로를 찾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북한 외교 전략 전술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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