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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아닌데…"EU 국경에 이름 모를 난민 무덤 1천기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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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유럽 이주하려다 3만명 사망…"시신이라도" 애타는 가족들

연합뉴스

이름 없이 묻힌 한 난민 무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폴란드의 한 국경 마을 묘지에 묻힌 한 난민의 무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묘비에 이름 대신 'NN'이라고 적혀 있다. 2023.12.09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유럽으로 이민을 시도하던 중 사망해 이름조차 표시되지 않고 매장된 난민의 무덤이 유럽 국경 곳곳에 1천 기 넘게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땅에 묻히지도 못한 채 시신 안치소나 영안실, 심지어 화물 컨테이너 박스에 쌓여있는 시신까지 합치면 최소 2천여 구가 무연고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이 최근 10년간 유럽연합(EU) 국경에서 사망한 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민자와 난민을 집계한 결과 최소 2천162구의 시신이 무연고 상태로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매체 취재진이 직접 방문해 확인한 무연고 무덤만 1천15기로, 성인 남녀부터 어린이, 태어나지 못한 채 엄마의 뱃속에서 목숨을 잃은 아기까지 많은 망자가 묘비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채 유럽 곳곳의 묘지에 묻혀있었다.

이 같은 사망자 수는 전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이례적인 숫자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유럽 이주민 유입 경로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2만9천 명 이상으로, 이들 중 대부분은 생사도 확인되지 않은 채 실종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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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온 튀니지 난민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EU 의회는 2021년 난민 사망자의 신원 확인과 정보 관리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현실에서는 이를 수행할 주체도 정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

유럽인권위원회의 두냐 미야토비치는 최근 극우 세력의 득세와 정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이 이 같은 비극을 해결할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더 지체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야토비치는 이 문제가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면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나 법의학 전문가들은 충분히 있지만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무연고 난민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들에게 인도하는 일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같은 비정부기구에 떠맡겨진 상태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ICRC에 유럽 이주 중 실종된 가족을 찾아달라는 요청은 1만6천500건 넘게 접수됐지만, 이 중 성공한 사례는 285건에 불과하다.

ICRC는 이 업무를 앞으로도 이어가려 하지만, 최근 유럽 정부들이 지원 예산을 줄이면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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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난민 (PG)
[권도윤 제작] 일러스트


고향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의 애달픈 사연은 쌓여만 가고 있다.

일부는 가족의 생사라도 알기 위해 직접 수소문에 나섰지만 유럽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 사는 50세 카프야 라히드는 지난해 소셜미디어에서 한 젊은 남성이 폴란드 국경에 설치된 전기 철선에 발이 묶여 공중에 매달려 있는 영상을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그는 영상 속 남성이 2021년 벨라루스로 이민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아들 사바라는 확신이 들었고, 영국에 사는 형제를 통해 수소문에 나섰다.

사바의 삼촌은 직접 폴란드로 가서 사바를 찾으려 했지만, 폴란드 당국은 영상 속 남성이나 사바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삼촌은 "사바가 죽었을 수도 있지만 폴란드 어딘가의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사바의 엄마가 매일 전화해 아이가 살아있는지 묻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

2013년 난민선이 뒤집히는 사고로 아들을 잃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시리아의 사바 알-주리는 10년째 매년 사고가 벌어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 가 아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그는 아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상처를 벌어진 채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며 "매일 죽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알제리 출신으로 지난해 스페인으로 망명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사촌을 찾고 있는 압달라는 가디언에 "힘든 것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그를 묻어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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