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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한국 엄마 귀신’이 휴가 끝에, ‘싱가포르 엄마’가 덕질 끝에 찾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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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극장가 찾아온 ‘엄마들의 휴가’

'천만 영화'를 향해 진격하는 '서울의 봄'부터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 '노량'까지, 대작들이 내걸리는 겨울 극장가의 틈새는 작은 영화가 덥힌다. 저승에서 휴가 얻어 이승의 딸 찾아온 '엄마 귀신'을 그린 한국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 한국 드라마 속 장소를 따라가는 패키지 여행길에서 자아 찾는 싱가포르 엄마의 '아줌마'(감독 허슈밍)다. 너무도 보편적이라 진부할 '엄마'라는 소재를 영리한 설정과 장치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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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일의 휴가'는 죽은 엄마의 시골집에서 엄마의 레시피를 찾아나가는 진주(신민아)와 그런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 복자(김해숙)의 이야기다. 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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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엄마 귀신'의 휴가



사후 3년 만에 3일 휴가를 받은 엄마 복자(김해숙)는 저승 가이드(강기영)를 따라 딸 진주(신민아)를 만나러 온다. 악착같이 공부시켜 미국 명문대 교수가 된 줄 알았는데, 고향 백반집을 이어받은 모습에 복장이 터진다. '만질 수도, 말할 수도 없고,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저승의 여행 규칙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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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줌마'에는 다비치의 '여성 시대'에 맞춰 에어로빅으로 아침을 여는 싱가포르 아줌마(홍휘팡)가 등장한다. 사진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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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시골집의 동화 같은 겨울 정경 속에서 진주가 찾아 나가는 엄마의 레시피가 회한과 그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오감으로 살렸다. 햄을 숭덩숭덩 떠 넣은 스팸 김치찌개, 갓 만든 흰 두부, 가마솥 가득 끓여낸 잔치국수, 입맛 까다로운 딸을 위해 무채 썰어놓고 빚어 쪄낸 특별한 만두까지, 끊임없이 모락모락 보글보글 익어간다. 육상효 감독은 영화 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억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영화에서 어떤 게 시각적으로 보일까. 음식ㆍ음악ㆍ풍경으로 기억을 환기해 내는 데 연출 포인트를 뒀다"며 "영화의 메시지는 '부모님의 전화 잘 받자'"라고 설명했다.

모녀의 사연이 진부한 신파로만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 것은 유영아 작가의 각본.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인 관객들에게 "내가 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질문하며 저승의 금기로 ‘눈물 속 웃음'을 심었다. 다양한 엄마 연기를 해 왔지만 "서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감정을 통하지 않으면서 따로따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배우 김해숙 씨는 "어머니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살아계실 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105분, 12세 관람가.



'싱가포르 엄마'의 휴가



아들 키우고 남편 간병하다 세월이 갔다. 남편과 사별한 빈집에서 아들 기다리며 한국 드라마 보는 게 일상인 림메이화(홍휘팡). 함께 드라마 속 한국 여행지를 찾아갈 꿈에 부풀어 있건만 아들은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아줌마를 돕는 '아저씨' 역할은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 패키지 여행길에 낙오된 림메이화는 덕분에 추운 겨울밤을 길에서 지새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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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관광객 아줌마, 우연히 도움을 주게 된 아파트 경비 아저씨(정동환), 그리고 사고뭉치 가이드(강형석)까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 '아줌마'. 사진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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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가난해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나"라며 인간의 본분을 잊지 않는 정수, 사채업자들에 쫓기면서도 별거 중인 가족을 찾아 나서는 불안 불안한 가이드 권우(강형석)와 함께 ’아줌마‘는 정해진 관광코스를 벗어나 현지인과 교류하며 길을, 그리고 자신을 찾아 나간다. 싱가포르와 한국의 두 베테랑 배우는 한국 드라마 대사로 배운 몇 마디 한국말로, 또 어설픈 영어로 서로에게 진심을 전한다.

서구식 로드 무비의 배경이 한국인 것, 또 난데없이 사채업자가 등장한다거나, 림메이화가 즐겨 보던 드라마 속 '최애' 여진구와 만나는 장면처럼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심어둔 것이 흥미롭다. 특별 출연한 배우 여진구를, 또 티아라ㆍ다비치ㆍ씨야가 부른 '여성 시대'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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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데뷔작 '아줌마'를 시작하면서 2015년 난생 처음 한국에 단체 여행으로 온 허슈밍 감독은 “한국 드라마 팬이었던 어머니가 영감을 줬다”며 “미국에서 화상 전화를 하면 주변 사람 근황을 얘기하듯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안부를 전했다”고 돌아봤다. 한국과 싱가포르 첫 합작 영화로 영어 제목도 '아줌마(Ajoomma)'다. 중국어 제목도 마찬가지인데, 중년 여성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길 아줌마'로 했다. 감독은 “아줌마라는 호칭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가 영화로 없어지면 좋겠다. 중년 여성들이 '그래, 나 아줌마야'라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해 중화권 최고 영화상인 금마장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ㆍ각본상ㆍ여우주연상ㆍ남우조연상(정동환) 후보에 올랐다. 90분, 12세 관람가.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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