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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특파원 리포트] 일본과 나란히 걷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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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3'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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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연의 성지(聖地)인 도쿄 돔구장에서 일본 록그룹인 X재팬의 리더 요시키(YOSHIKI·본명은 하야시 요시키)가 피아노를 쳤다. 4만명이 꽉 채운 돔구장에서 요시키가 연주하는 1980년대 명곡 ‘엔드리스 레인(Endless Rain)’의 피아노 선율이 흘렀고 한국 아이돌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태현이 “아임워킹인더레인(I’m walking in the rain), 유쿠아테모나쿠”라며 첫 소절을 불렀다. ‘와’ 하는 함성은 순간 도쿄돔을 채웠다. 지난달 28일 도쿄 돔구장에서 열린 ‘2023 마마어워드’에서 21살의 K팝 아이돌이 58세 중년의 J팝 전설인 X재팬 요시키와 일본 관객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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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3'의 비즈니스 리더스 세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2.1 /SK수펙스추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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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에는 일본 지성(知性)을 대표하는 도쿄대 야스다강당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등장했다. 최 회장은 데루오 후지이 도쿄대 총장에 이어 무대에 올라, 영어로 “한국과 일본이 누렸던 ‘단일한 세계 경제권’ 시대는 거의 끝났다”며 “(경제 분단의 시대에) 미국과 중국·EU는 각각 25조달러, 18조달러, 16조달러의 경제권을 가졌는데, 일본과 한국은 혼자선 작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2050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는 한일이 함께 7조달러의 경제권을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옆 자리에 앉은 야스히로 사토 게이단렌 부회장은 물론이고 관객석의 20~30대의 도쿄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경청했다.

한국의 고도 성장기를 이끈 60~70대 독자들에겐 낯선 광경일 터다. 1960년대 경제 부흥에 나선 한국은 줄곧 ‘극일(克日)’을 내걸고 일본의 앞선 경제·산업·문화를 배우는 입장이었다. ‘아시아의 4룡’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당시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과 비교하긴 민망했던 게 현실이다. 한국 재벌은 일본 기술자들을 주말에 공장으로 모셔와 노하우를 귀동냥하고 저녁을 대접했다. 방송국 PD는 도쿄에 한 번씩 가선 여관에 틀어박혀 TV방송만 밤새 보고 와선 프로그램에 써먹었던 시절이다. 일본 노래를 베꼈다는 한국 인기곡의 표절 논란은 자주 사실이었다. ‘기술이든, 노래든, 심지어 실수까지도 모두 베낀다’는 일본의 비야냥을 들었다. 축구 한일전에서나마 일본과 대등한 한국을 느끼며 위안받던 때다.

극일(克日)이라 불리던 시대는 갔다. 우쭐댈 일만은 아니다. 일본 등만 보고 뛰면 만사 오케이던 시절도 끝났기 때문이다. 이젠 일본과 나란히 걷는 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7차례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난 것도 이웃나라 일본과 대등하게 사는 법을 찾는 과정일지 모른다. 도쿄대에서 만난 대학생은 “노쇠한 일본 경제를 걱정하는 한국 최 회장의 충고를 새겨듣겠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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