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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검사·유동규 면담, ‘위법’ 판단했지만 김용 유죄는 왜[뉴스깊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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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불법 정치자금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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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가 지난달 3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불법 정치자금·뇌물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검사가 지난해 9월26일 한 면담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9월26일은 유 전 본부장이 혐의를 부인하던 입장을 바꿔 이 대표 측에 대해 폭로성 진술을 처음 한 날입니다.

검찰이 수집한 증거를 법원이 피고인에 대한 유죄 증거로 사용하려면 ‘적법하게 수집했다’는 게 입증돼야 합니다. 재판부는 왜 이 면담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는지, 위법한 면담에도 불구하고 왜 김 전 부원장을 유죄로 판단했는지 판결문을 토대로 살펴봤습니다.

검사의 피의자 면담..법원 “실질적으론 조사..적법절차 보장돼야”


재판부는 148쪽 판결문 중 15쪽에 걸쳐 검사와 피의자들의 면담이 위법했는지 검토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 측이 검사 면담과 관련해 재판에서 한 주장은 크게 둘입니다. 검사가 유 전 본부장과 면담하면서 조서나 수사보고서 등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아 위법하고, 검사가 장기간 면담을 통해 유 전 본부장에게 사실관계에 관한 암시나 오인을 줘 진술이 왜곡됐으므로 유 전 본부장 진술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피의자 조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조사장소에 도착한 시각, 조사를 시작하고 마친 시각을 기록해야 합니다. 조서를 작성해야 하고,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검사의 면담은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절차가 아닙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 면담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일각에선 용이한 수사를 위해 면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2018년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변호인 참석을 불허하는 피의자 면담은 하지 않도록 하라’고 검찰에 권고했고 이는 수사규정에 반영됐습니다. 이번 재판부는 “대화의 시점이나 장소, 조서 작성 여부나 영상녹화 여부 등과 무관하게 (면담은) 실질적으로 피의자신문에 해당한다”며 “면담 과정에서도 필수적으로 변호인 등의 참여권 보장, 진술거부권 등의 고지가 이뤄져야 하고 수사관 등의 참여, 수사과정의 기록과 관련 수사준칙 규정도 준수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사와 유 전 본부장의 지난해 9월26일 면담에선 이런 원칙이 지켜졌을까요? 이날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수사를 거부하던 유 전 본부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날입니다. 검찰이 유 전 본부장을 위례신도시 의혹으로 추가기소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날 유 전 본부장은 서울중앙지검 601호 검사실에서 두 장의 수사과정 확인서를 작성합니다. 그런데 면담 후 작성한 진술서에 첨부된 수사과정 확인서에는 조사장소 도착시간이 ‘10시03분’이라고 돼있는 반면 정식 피의자신문조서에 첨부된 수사과정 확인서에는 ‘10시00분’으로 다르게 적혀있었습니다. 진술서의 수사과정 확인서에는 조서 열람 종료 시각이 ‘11시34분’, 피의자신문조서의 수사과정 확인서에는 조사 시작 시간이 ‘14시32분’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면담과 조사의 시각이 불분명하게 기재돼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두 장의 수사과정 확인서를 별도로 작성한 이유나 각 조사장소 도착시간, 조사시각 사이의 차이, 조사과정 진행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 등에 대해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면담 후 작성한 진술서는 검사가 질문과 방향을 정해주고 그 아래에 유 전 본부장이 자필로 내용을 채워넣는 형식으로 일반적인 진술서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사의 2022년 9월26일자 유동규의 부패방지법 위반 등 피의사건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내지 유동규의 진술서는 면담의 적법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그에 이어 작성된 것”이라며 “형사소송법 및 수사준칙 등에 따른 적법한 절차와 방식을 구비한 조서라고 보기 부족하므로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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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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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남욱의 검사 면담 일부, 2차 증거 ‘위법수집’ 판단


재판부는 지난해 10월6일 검사가 남욱 변호사와 한 면담도 ‘위법한 면담’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날은 유 전 본부장이 불법 정치자금 관련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안 남 변호사가 처음으로 자백성 진술을 한 날입니다.

검사가 낸 면담보고서에는 면담 경위로 ‘2022년 10월6일 오전 10시 피의자 OOO 등에 대한 부패방지법 위반 사건에 관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1043-1호 조사실로 출석’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조사를 했다면서도 진술조서는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면담보고서에는 면담 시작 시간이 ‘오전 10시’로 적혀있는 반면 남 변호사가 작성한 진술서에는 조사 시작 시간이 ‘17시20분’, 조사 종료 시각이 ‘17시30분’이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면담에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이 보장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실제로 면담장소에 도착한 시간이나 해당 장소를 떠난 시각 등을 확인할 수 없다”며 지난해 10월6일 면담과 그 결과 남 변호사가 작성한 진술서는 위법수집 증거라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면담에서 남 변호사가 한 진술에 기초해 검찰이 취득한 대장동 관계자 이모씨의 진술서, 이씨가 임의제출한 ‘Lee list(golf)’ 메모지도 ‘위법수집’ 됐다며 증거에서 배제했습니다. 위법 면담 당일 검찰이 이씨를 불러 검사실에서 남 변호사를 만났고, 남 변호사 요청에 따라 이씨가 메모지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에 메모지는 면담의 직접 영향을 받은 2차적 증거라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이 메모지를 직접 제시하며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도 증거에서 배제됐습니다. 이 메모지에는 불법 정치자금의 액수와 교부 날짜가 적혀있어 언론에 다수 보도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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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유리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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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면담 위법하지만 이후 조사에선 위법 요소 제거”


재판부는 위법한 면담을 일부 인정했지만, 그 외에 이뤄진 면담과 조사는 적법해 관련 자료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유 전 본부장과 관련해 재판부는 “2022년 9월26일 이후 작성된 조서나 면담에 위법이 지속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위법 요소가 제거 내지 배제돼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10월5일 다시 검찰에 출석해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진술을 했는데 이 때는 위법한 면담으로부터 10일 가량 지난 후라 위법 상태가 계속된 것은 아니라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이 법정에서 “변호인 조력권을 고지받았으나 어차피 사실대로 이야기할 것이므로 검사에게 변호인 조력을 받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조사를 받거나 면담을 받았다”고 증언한 점도 고려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 변호사의 일부 위법한 면담 외의 피의자신문조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단순히 면담을 많이 했다는 것만으로 위법 수사를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도 덧붙였습니다. 조사에 앞서 피의자의 기억을 환기시키려면 검사가 면담을 여러 번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위법수집 증거를 뺀 나머지 증거들을 토대로 검토한 결과 유 전 본부장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게 불안했고 이재명 대표 측에 배신감을 느껴 태도를 바꾼 과정이 합리적이고, 검찰이 추가 수사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유 전 본부장에게 협박·회유를 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배경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7일 “유 전 본부장은 처음에 이재명·정진상을 위해서 책임을 안고 간다는 생각이었지만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 변호사를 통해 감시하는 모습 등을 보고 사실대로 이야기하게 된 것”이라며 “검찰의 회유는 전혀 없었다”고 재차 말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과 검찰 모두 항소해 2심 재판에서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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