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위축과 원자재 가격 상승,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 악재가 쌓인 상황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시한이 다가오면서 중소 건설사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적용을 다시 유예하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확대 적용이 50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우려가 작지 않다. 아울러 앞서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늘어나는 등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중대재해법을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 고위 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은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 또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1월 27일부터는 유예 기간이 마무리돼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소규모 건설사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중대재해법을 시행하면 소규모 사업장은 기업 운영을 포기하거나 범법자만 양산될 우려가 높다"며 유예 기간 연장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지만 야당과 양대 노총 등이 부정적이어서 기간 내에 논의가 마무리될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건설업계는 80만여 곳에 달하는 중소 건설사 대부분이 시행을 앞두고도 비용 부담과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중대재해법 대응에 미흡한 상황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최근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 조처한 기업은 3.6%에 불과했고 응답 기업 중 96.8%가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여력이 좋지 못한 영세 기업들로서는 자칫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근간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칫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9월 말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1~9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인 건설사에서 산재 사망자가 97명 발생해 지난해보다 18.3%(15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올해 3분기 산재 사망자는 40명으로 지난해 3분기(32명)보다 늘었다. 중대재해법 적용이 곧 사망자를 줄이는 효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중대재해법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전관리자 전문 인력 풀이 부족해 전담조직을 구성·운영하기 어려운 데다 채용에 따른 비용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법 관련 소송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SGC이테크건설은 중대재해법을 근거로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강경하게 처벌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중소 건설사에 알맞은 지원을 통해 현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윤동·신동근 기자 dong0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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