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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화)

갠지스 강물 먹방에 '대상84' 됐다…기안84의 성장드라마 [이윤정의 판&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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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기안84처럼 달리고 기안84처럼 여행하고 싶다. TV를 보며 문득 든 생각에 나도 살짝 놀랐다. 호감과 비호감의 경계를 넘나들던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 되다니.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개국 시리즈와 ‘나 혼자 산다’ 마라톤 도전을 계기로 기안84는 보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예술가의 감성과 충동으로만 가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뚝심과 끈기의 사나이였다. 대도시 서울에서 다소 ‘기인’처럼 여겨지던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바깥세상으로 향하자 날개가 되어주었다. 그는 세상의 낯선 문화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작은 깨달음마저 주고 있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안84는 수년간 TV 예능프로그램이 만든 가장 성공한 캐릭터다. ‘대세84’ ‘대상84’가 요즘 그의 별명이다.



세계 일주 프로그램 속 신선함

낯선 문화도 자연스럽게 즐겨

그와 함께 시청자도 성장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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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앤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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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에서 현지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한 기안84는 당연히 물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그들을 말리고 굳이 모래 묻은 손으로 생선 살을 발라내 초장과 함께 들이민다. 생전 처음 접하는 음식 문화에 기겁하는 그들의 표정. 세상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문화는 낯설고 어렵다. 보통 사람의 여행이 그들의 낯선 문화에 놀라고 힘겹게 그들의 음식을 맛보는 것인데, 그는 여행객으로서 현지인을 놀라게 한다.

이런 장면은 그들이나 나나 각자 기이한 문화의 소유자라는 걸 즉석에서 증명한다. 결국 함께 먹고 웃음 지으며 그는 현지인과 급속히 친해진다. ‘현지 적응’이라는 예상을 벗어나 현지인에게 우리 문화를 ‘강제 전파’하고, 구경하러 여행 가서 자신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반전이 웃음의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그의 여행 예능이 남달라지는 지점이다.

어쩐지 아슬아슬해 보이는 그의 여행 속 기행은 갠지스강에서 수영하고 더러운 강물을 떠먹고 피라냐가 헤엄치는 아마존 강물에 뛰어들고 우유니 사막의 소금으로 이를 닦고, 입속에 넣었던 반죽으로 만든 현지 전통 음료도 들이켜는 등 끝이 없다. 분명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여행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인도와 내가 하나 되고 싶다”고 외쳤던 그는 최선을 다해서 여행지의 맥락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다. 자신의 ‘컴포트 존’에서 완벽히 탈출해 불안하지만 새로운 공동체의 일상에 집중적으로 참여한다. 허물없이 말을 걸고 그들의 집을 찾아가고 결혼식과 파티에서 함께 먹고 춤춘다. 그들과 똑같이 무릎을 꿇고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어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그러면서 빨리 그들과 친구가 된다. 편견 없이 내부자의 시선을 가지려 노력하고, 짧지만 진하게 일상으로 들어가 이물감 없이 녹아드는 그의 여행은 ‘인류학적’이라고 할만하다. 그는 멋진 곳과 맛집을 찾아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썼던 나의 여행을 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발견의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그걸 볼 때 이뤄진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확실히 그의 여행은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새로운 기쁨을 제시한다.

가장 성공한 캐릭터 기안84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가장 성장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7년 전쯤 그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는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고 눈치 없어 보이고 철없고 좌충우돌하는 존재로 보였다. 시멘트 바닥의 자췻집과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자는 그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로 신선함을 안겨주면서도 왠지 불안 불안한 모습이었다. “재미는 있지만 저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 남자친구라고 생각해보세요”가 그에게 늘 달리는 댓글이었다.

그가 웹툰에 보인 사회적 약자나 여성에 대한 시각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편견’을 의심받았던 그는 지금은 낯선 문화와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진심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여행을 통해 더욱 내면을 발전시키는 그를 기대한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할 때만 해도 방송은 그의 행동을 손쉽게 웃음거리로 몰아가거나 공격하는 모습이어서 불편했다. 심지어 한 회에서는 출연자들로부터 따돌림당했다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는 그의 기행이 이어지지만 패널들이 비웃거나 놀리지 않고 감싸주는 분위기라 보기에 더 편하다. 흥미롭지만 낯선 사람인 듯 그를 ‘구경’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 그의 특이함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하겠다.

“대상을 받는 게 무섭기도 하다. 근데 받아도 똑같이 살 것 같다”라고 그는 며칠 전 말했다. 그의 성장드라마를 함께 보아온 이들이 바라는 점도 같을 것이다. ‘대세84’ ‘대상84’가 되더라도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돌처럼 낯선 세상과 부딪히기. 버킷리스트를 다 실현한 뒤에도 또 철없는 여행을 하며 끝없이 성장하기.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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