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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일)

[강혜란의 쇼미더컬처] 서울의 봄, 경복궁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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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에서 눈길이 꽂힌 장면이 있다. 전두광(전두환을 캐릭터화) 측 반란군 진압을 위해 이태신(장태완을 캐릭터화) 수경사령관이 휘하 야포대대에 반란군 본부를 포로 날려버리라고 지시할 때다. 화면에 클로즈업된 작전 지도에 근정전·경회루 같은 전각 이름이 또렷했다. 당시 반란군이 거사를 모의한 곳이 경복궁 내 30경비단 본부라서다. 청와대 경비 담당인 30경비단은 경복궁 영추문(서문) 위쪽부터 청와대와 맞닿은 신무문(북문)까지 약 2만평을 차지하고 있었다.

“밤샘 근무나 새벽 출근 때면 30경비단 군인들이 구령에 맞춰 새벽 구보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영추문 인근에 있었던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근무 시절을 김창준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30경비단의 주둔 기간은 1961년 5월 16일부터 1996년 12월 17일까지. 5·16 당시 서울 수색에 있던 30사단 1개 대대가 박정희 소장 편을 들어 역쿠데타에 대비해 경복궁으로 진주한 게 시작이다. 1975년 차지철 경호실장 재임 당시 경비단으로 승격됐고, 아예 주둔지를 국방부 장관이 위임받아 관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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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에서 보이는 청와대 본관. 신무문은 30경비단 철수 10년 후인 2006년 일반에 개방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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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사적 제117호인 경복궁 부지 안에서 30경비단 영역은 ‘금단의 땅’이었다. 이들이 서쪽과 북쪽을 틀어막고 있고, 남쪽은 정부종합청사(옛 조선총독부 건물)가 있으니 경복궁 관람 출입구는 국립민속박물관 쪽 건춘문(동문)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강녕전·교태전 등 침전(寢殿) 자리는 휑한 빈뜰이었다. 일제 때 옮겨온 석탑 40여개가 서 있었는데 경복궁 복원이 시작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고 김창준 이사장은 돌아본다. 1995년 중앙청 건물이 폭파 철거되면서 광화문은 비로소 경복궁 정문 기능을 되찾았다.

지금 30경비단이 빠져나간 자리엔 태원전이 복원돼 있다. 북쪽으로 향원정·집옥재·건청궁 등도 제 모습을 찾았다. 신무문(2006년)에 이어 영추문(2018년)도 개방돼 사방에서 경복궁을 드나들 수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30경비단 철수 후에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소규모 부대가 신무문 일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북악산 성곽로가 개방되면서 신무문 경계 병력이 더욱 축소됐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제 경복궁을 지키는 군인은 아무도 없다. 실은 그들이 지킨 건 청와대였지 경복궁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복궁을 지킨 건 시민일지 모른다. 12·12 사태 당시 야포단장이 “광화문 일대가 쑥밭이 된다. 민간인의 피해가 말도 못할 정도로 크다”고 명령 철회를 건의하고 장태완 사령관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600년 영욕 끝에 온전히 시민의 것이 된 ‘경복궁의 봄’이 새삼스러운 이유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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