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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금융포커스] 매해 원수처럼 싸우던 은행 노사, 이번엔 아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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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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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인 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에 대해 은행별 대응 방안을 공유하는 등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자고 사용자 측에 제시했다. 매해 임금협상 때마다 극한 대립을 이어가던 은행 노사가 ELS 불완전 판매 의혹이 커지자 손을 맞잡을지 주목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신임 은행연합회장은 최근 금융노조와의 면담에서 이런 내용을 제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면담은 조 회장과 금융노조의 상견례를 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 제안에는 은행별로 현재 대응 방안을 공유하고 공동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현재 ELS 불완전 판매 여부를 검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해서도 노사가 공동 대응하고 판매 직원 인권 보호, 과도한 징계 방지, 민원 평가 제외 등 직원들을 보호하는 방안도 담겼다. 공동 대응을 위해 노사 태스크포스(TF)도 구성도 제안됐다.

홍콩H지수 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가 현실화하자 금융노조가 사용자 측에 공동 대응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가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3년여간 1만2000선에서 6000선으로 반토막이 나면서 이와 연계된 ELS 상품 상당수가 손실을 볼 수 있는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약 16조원)의 절반인 8조3000억원가량이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데, 손실 구간에 진입한 물량은 56%(4조7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들은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가 불완전 판매 문제로 확산하는 데 우려를 보이고 있다. 홍콩H지수 ELS의 손실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미 금감원에 불완전 판매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민원을 보면 은행이 홍콩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투자 위험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70대 고령층에게 가입시켰다”, “상품 가입을 권유하며 투자성향까지 수정하게 했다” 등 불완전 판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도 최근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금융사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측이 합의해 은행이 공동 대응에 나설 경우 ELS 가입자들은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보통 금융사 상품 판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금감원은 이를 검사한 뒤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확인한다. 이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불완전 판매 여부를 확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보통 은행들은 퇴직 금융 당국 출신들이 근무하는 대형 법무법인(로펌)을 고용해 대응한다. 이런 은행들이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에 공동전선을 구축하면 개인 소비자들이 대응하긴 역부족이다. 개인이 은행과 협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당국 힘을 빌려야 한다. 다만 금융 당국 역시 은행들이 매뉴얼까지 마련해 공동 대응할 경우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노조가 사용자 측에 공동 대응을 제안한 것도 다소 이례적이다. 은행 노사는 그동안 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을 두고 늘 첨예하게 대립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때도 협상이 결렬돼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했다가 가까스로 합의점을 찾았다. 지난해 9월에는 임단협이 결렬되면서 노조가 총파업을 강행하기도 했다.

송기영 기자(rck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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