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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 (토)

[아침을 열며] 우리를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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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사업가였던 앙리 뒤낭은 우연히 이탈리아 북부에서 벌어진 솔페리노 전투를 목격하게 된다. 4만여명의 부상자와 사망자가 전장 곳곳에 그대로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부상병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에 앞장선다. 그렇게 맺어진 결실이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약인 ‘제네바협약’이다.

1933~1945년 나치 독일은 유럽 전체 유대인의 3분의 2에 달하는 600만명의 유대인을 강제노동 수용소와 가스실에서 학살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학한 행위인 ‘홀로코스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 회원국들은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1948년 총회에서 ‘대량학살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을 통과시켰다.

1951년 만들어진 유엔난민협약도 홀로코스트의 교훈에서 비롯한 것이다. 1939년 937명의 유대인이 나치를 피해 ‘MS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들의 입항을 거부했고, 이들 상당수는 결국 유럽으로 되돌려져 학살당했다. 유대 난민에게 문을 걸어 잠근 국가들의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이 협약은 박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모든 나라가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2002년에는 로마조약이 발효되면서 집단살해죄와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립됐다. 홀로코스트 이래 최악의 전쟁범죄로 꼽히는 1990년대 르완다 내전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목격한 후 민간인 대량학살에 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이처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국제법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 속에 탄생한 것들이다. 인류는 늘 최악의 어리석은 실수를 되풀이해왔지만, 그때마다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제법의 강제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국 정부가 그 원칙에 구속되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것은 아무런 합의도, 규칙도 없는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지 집단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가자지구와 세계 곳곳서 일어나는 참상을 지켜보는 일이 더욱 고통스럽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극의 규모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목숨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역사적 배움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이다.

세계의 관심이 가자지구에 쏠려 있던 지난달 초,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사흘 동안 1300명에 달하는 마살리트족이 집단학살을 당했다. 수단의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이 서부 다르푸르의 한 난민촌을 집집마다 뒤져 마살리트족 남성들만 색출해 몰살시킨 것이다. 아프리카 농경 주민인 마살리트족은 2003년 다르푸르 사태 당시에도 RSF의 전신인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로부터 대학살을 당한 바 있다. 다르푸르 사태는 ICC가 설립된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최초로 회부한 사건이자, ICC가 조사에 착수한 첫 집단살해 범죄였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20년 만에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자지구에서는 짧은 휴전 끝에 다시 폭격이 재개됐다. 하마스의 기습에 따른 반격이라고 하나, 이미 자위권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두 달 동안 가자지구의 학교와 병원과 난민촌을 공습하고, 물과 전력과 식량의 반입을 차단했다. 가자지구 전체 주민의 4분의 3 이상이 난민이 됐지만, 국경은 닫혀 있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미사일 탓에 안전한 대피로마저 제공되지 않는다. 대량학살 방지와 난민보호 국제법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국제법의 무덤’으로 만들었다고 비판받는 지금의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국제법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때 우리는 국제법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만 깨닫게 된다. 강대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법을 선택적으로 들먹이고, 힘없는 국제법 대신 강대국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 약소국은 침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국제법밖에 없다. 다그 함마르셸드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국제법의 목적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케냐의 작가 난잘라 니아볼라는 “국제법의 핵심은 보편적인 준수가 아니라, 준수를 향한 보편적인 열망”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비극을 통해 얻어낸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경향신문

정유진 국제부장


정유진 국제부장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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