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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美최초 여성 연방대법관 오코너 별세…격동의 시기 '중심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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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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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대법원에 따르면, 오코너는 알츠하이머로 추정되는 진행성 치매와 호흡기 질환 등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앞서 오코너는 지난 2018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며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오코너는 2006년 1월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을 돌보기 위해 은퇴할 때까지 25년간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했다.

로스쿨 1년 후배였던 남편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다른 여성과 친하게 지내자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쁘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에 의해 뽑혔지만, 오코너 전 대법관은 중도 성향으로 격동의 시기 낙태권과 성소수자 등 민감한 현안에서 대법원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보수 종교 단체와 낙태 반대론자들은 오코너가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며 오코너의 지명에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미 상원은 만장일치로 오코너를 인준했다.

'로 대(對) 웨이드'는 1973년에 이뤄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당시 연방대법관들은 찬성 7 대 반대 2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되므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다.

오코너는 낙태 권리를 철폐하자는 주장을 거부했다. 그는 1992년 '가족계획연맹 대(對) 케이시' 판결에서 낙태 사례를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지만,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의 핵심 입장은 재확인했다.

하지만 오코너 전 대법관은 자신이 지켜낸 '낙태권 합법화'를 지난해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뒤집는 현실을 목도한 뒤 세상을 떠난 셈이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코너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새무얼 얼리토 연방대법관은 지난해 "오코너의 결정이 논쟁을 격화시키고 사회 분열을 심화시켰다"며 낙태 권리 폐지에 앞장섰다.

그는 아들 조지 부시와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맞붙었던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 재개표 문제에서 부시의 손을 들어줘 법원의 선개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낙태·사형제도·소수자 보호 등 사회적 대형 이슈에선 보수나 진보에 치우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학 입학에서 소수 인종을 배려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한 것을 비롯해 투표권, 동성애 등의 이슈에서 소수자 권리 수호에 무게를 둔 판결을 주도했다.

특히 휴스턴 경찰이 동성간 성행위자를 체포한 사건과 관련해 2003년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체포의 근거가 됐던 텍사스 주 법령을 위헌 판결했다.

이 판결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2015년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의 초석을 다지는 데 밑거름이 됐다.

1930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태어난 오코너는 애리조나주에서 광활한 목장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7살이 될 때까지 수도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침실 4개짜리 흙벽돌 집에서 살았다.

약 2,000마리의 소를 돌보는 목장 일을 거들면서 자연스레 거친 일에 익숙해졌고 자립심과 성실한 자세를 몸에 익혔다.

스탠포드대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여성 차별이 심했던 당시 법조계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로펌의 문을 두드렸지만 "당신은 어떤 종류의 타자를 다룰 줄 아느냐. 혹시 타이핑을 할 수 있다면 비서직을 제안 드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방대법원의 유리천장을 깬 그녀는 추후 여성의 대한 사회의 장벽을 허무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는 "사회가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으면, 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성에 대한 장벽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며 양성평등 사회를 향한 씨앗을 심었다.

현직 연방대법관인 엘리너 케이건은 오코너 전 대법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만약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사람이 한명으로 정해진다면, 나는 그 사람이 오코너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잘 풀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코너는 이 나라가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결정적인 판결을 했고, 이를 쉬지않고 계속해왔다. 실제로 우리는 그것 때문에 더 나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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