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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단독] 삼성 '퇴직자의 꽃' 상근고문제 대폭 축소…비용절감 고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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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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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최고 수준의 퇴직자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삼성그룹이 상근고문 제도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현재 위촉 상태에 있는 기존 상근고문들도 폐지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S급 인재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를 제공해 재계의 부러움을 샀던 삼성이 상근고문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한 것은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비용 절감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현업에 몰입하는 현직 임직원들에게 혜택을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상근고문 제도를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하고 계열사별 2024년도 정기인사부터 이를 반영했다. 이번 정기사장단인사에서 퇴임 통보를 받은 한 사장급 퇴직자는 자문역으로 1년 임기가 주어지기도 했다.

상근고문 제도는 삼성그룹이 자랑하는 퇴직자 프로그램의 '꽃'으로 꼽힌다. 사장급·부사장급 중에서도 기여도가 큰 일부 퇴직자에게 제공되는 혜택으로 사장 재임 시절 급여의 70~80% 수준을 지급받고 사무실과 비서, 차량, 법인카드, 골프회원권 등이 제공된다. 통상적으로 1~3년의 임기가 주어지지만 최대 5년까지 위촉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퇴직자 프로그램에는 상근고문, 비상근고문, 상담역, 자문역 등이 있다. 상근고문에는 가장 높은 단계의 혜택이 주어지고, 비상근고문·상담역·자문역 순으로 혜택이 차등적으로 제공된다. 상근고문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만 20여 명에 달한다. 이를 감안하면 전체 계열사에 걸쳐 50~60명으로 추정된다.

보통 삼성 사장급이 퇴임하면 중요 업무 수행 여부에 따라 상근 혹은 비상근고문에 위촉되거나 상담역을 맡게 된다. 예를 들어 등기이사를 수행했던 권오현 전 회장과 윤부근 전 부회장은 2020년 퇴직 후 상근고문직을 2년간 맡았고, 이후 현재까지 비상근고문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업부장직을 맡았던 사장급 인물이 퇴직 후 바로 상담역으로 위촉된 경우도 있다. 부사장급 이하 퇴직 임원은 비상근고문을 거치거나 자문역으로 이동한다.

삼성이 퇴직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까닭이 있다. 한국 대표 기업이자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이라는 명성에 맞게 회사에 기여한 임원을 예우하는 차원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임해야 하는 상황에 따른 심리적·금전적 충격을 덜어주고 대외적으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경쟁사로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비전을 지닌 삼성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온 고위 임원들은 각 기업의 영입 사정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의 고위 퇴직자들이 국내외 경쟁사로 자리를 옮기는 대신 삼성에 남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의 최고위직을 경험하면서 쌓아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요긴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삼성이 이 같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퇴직자 프로그램의 최상단에 있는 상근고문직을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은 비용 절감에 대한 필요성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부문의 막대한 적자와 함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삼성은 비용 절감에 고삐를 조이고 있는 시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최고위층에 있다가 퇴직하는 시점의 급여를 감안하면 인건비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조직 내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현재 재직 중인 임직원에 대한 대우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기존에 운영 중인 상담역·자문역 제도를 활용하면 고위 퇴직자에 대한 예우는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상근고문직을 대폭 줄이더라도 비상근고문과 자문역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다만 옛 삼성종합기술원인 SAIT에서 퇴임한 김기남 회장은 예외적으로 상근고문이 아닌 '상임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위촉됐다. 김 회장 사례처럼 회장직을 수행했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상임고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일각에선 이번 제도 변화에 따라 삼성 최고위직 출신 퇴직자들이 다른 경쟁사로 이동하는 사례를 막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최고위급 인물이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삼성 입장에서도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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