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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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성경(욥기) 말씀을 되뇌었습니다(울컥)”
임종헌(64)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성경 구절을 언급하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5년간 이어온 ‘사법농단’사건의 1심 마지막 재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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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처음이자 마지막 임종헌… 검찰 7년 구형
27일 중앙지법 형사36-1부(부장판사 김현순·조승우·방윤섭)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 재판이 시작된 지 5년 만에 최후진술에 나선 임 전 차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거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신기루같은 허상과, 과도한 상상력에 기한 주관적 추단이 점철된 공소사실보다는 엄격한 증거에 따라 증명되는 실체를 파악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십사 간곡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앞서 지난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구형한 것과 같다. 구형에 앞서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해 “재판을 사법정책적 목적으로 활용해 사법부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사법부의 이익 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선고 기일은 내년 2월 5일이다.
차준홍 기자 |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대법원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정부·국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강제징용 손배소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사건 등 일방 당사자와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법원 행정에 비판적인 내부 구성원들에 인사 불이익을 주고,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각종 압박 수단을 동원했다는 혐의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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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소된 ‘키맨’… 윗선도 하급자도 모두 “임종헌이 했다”
김영옥 기자 |
임 전 차장은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첫 단추이자 ‘키맨’으로 불렸다. 2018년 7월 1일 첫 압수수색은 물론 첫 검찰 조사, 첫 구속, 첫 기소의 대상이 모두 임 전 차장이었다. 검찰은 임 차장의 구속기소를 지렛대 삼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겼고, 전직 대법관, 전직 대법원장을 최초로 법정에 세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각급 법원 실무자와 행정처 실무자 등에게 직접 지시하고, 이행 상황을 윗선에 보고한 혐의를 받는 임 전 차장은 함께 기소된 법관들과 따로 떨어져 홀로 재판을 받았다. 5년간 이어진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모두 “임 전 차장이 알아서 한 일이고, 나는 모른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은 실무자들은 “임 전 차장이 시켜서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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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프레임으로 수사, 음험한 정치적 책략”
윗선도, 하급자도 모두 자신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임 전 차장의 주된 항변은 “사법행정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었다. 2019년 첫 재판에서 “법원행정처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임 전 차장은 마지막 재판에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그는 “사법행정은 판사가 을의 지위에서 ‘슈퍼 갑’ 국회와 행정부를 설득하고 법무부와도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며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발생 가능한 다양한 가상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복수의 시나리오와 대응방안을 항상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하는데, 검찰은 이런 검토 보고서 작성 자체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재판에서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를 들며 “공소사실 중 일부는 사법행정권의 이탈‧남용이라고 할 수 있더라도, 형법상 직권남용은 아니다”라고 했던 임 전 차장은 27일 결심공판에서도 “존재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법농단을 거창한 프레임으로 기정 사실화했다”며 “음험한 정치적 책략과 역학관계, 검찰의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했다.
차준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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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249번 재판… 양·박·고 보다 임종헌 재판이 더 길다
차준홍 기자 |
임 전 차장의 재판은 4년 7개월 만에 마무리 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보다 더 오래 걸렸다. 피고인 한 명의 재판이 3명 재판만큼 길어진 건 임 전 차장의 재판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판 초기 '주 4회 집중심리'를 하려던 재판부에 항의하며 변호사를 모두 사임시키고, 재판부 기피신청도 두 번이나 낸 데다 한 차례 재판부가 바뀌기까지 했다.
후배 법관들이 찾아와 지켜본 양 전 대법원장 결심 때와는 다르게, 이날 임 전 차장의 결심에 찾아온 사건 관련인들은 없었다. 임 전 차장은 “오랜 기간 구축한 사법부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구성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책감을 가지고 매 순간을 보내고 있다”며 “후배 법관들이 난생처음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겪었을 심적 고통에도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김정연‧이병준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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