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5일 울산을 찾아 의정보고회를 개최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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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비상대책위원회 전환론자들은 ‘김기현 얼굴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해찬 전 대표가 그랬듯 총선을 꼭 대표의 얼굴로 치를 필요는 없다”며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인사를 내세워 표몰이를 하고, 김 대표는 당 조직과 전략을 뒤에서 컨트롤하면 된다”고 말했다. 친윤계 핵심 의원도 “지금은 우리가 김기현 체제로 똘똘 뭉쳐 선거에서 이길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며 “이 전 대표의 사례가 좋은 귀감”이라고 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21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겼고, 이 전 총리도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와 맞붙으며 총선을 사실상 ‘이낙연의 민주당’ 체제로 치렀다. 잠재적 대권 주자로 당 안팎의 주목을 받던 이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대신 이 전 대표는 물밑 조율에 집중해 민주당의 총선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4월 14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오른쪽) 공동상임선대위원장과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 선거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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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주당 상황과 현재 국민의힘 상황이 유사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은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로 여론이 악화했고, 이 전 대표는 강성 지지층과 중도층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고 있었다. 당내에선 ‘이해찬 체제’에 대한 우려가 번졌고 “대중에 ‘꽂힐 수 있는’ 진용을 짜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강훈식 의원)는 주장도 잇따랐다. 민주당 의원은 “이 전 대표도 원치 않았겠지만, 그게 본인과 당이 사는 길이었다”며 “결과적으로 총선에서 압승한 전략”이라고 회상했다.
여권에선 김기현 대표 대신 전면에 나설 인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로 언급된다.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직전까지 내각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소통이 원활하고 전국적 인지도도 갖췄던 이 전 총리가 21대 총선을 이끌었듯 내각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마음이 맞고, 인지도도 높은 두 사람이 여러모로 간판으로 적합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대전 중구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CBT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뒤 지지자들에게 사인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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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두 장관의 최근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한 장관은 지난 17일 대구를 찾아 “대구 시민은 6·25 전쟁 때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며 보수 결집을 겨냥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출마를 시사한 원 장관은 지난 25일 인요한 위원장을 만나 “국민과 당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제 역할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김기현 대표의 행보도 이런 흐름에 부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표는 지난 25일 지역구(울산 남을)를 찾아 “내 지역구와 고향은 울산”이라고 강조했다. 울산 달동과 선암동 등 지역구를 누비며 이날 의정 보고회를 세 차례 연 김 대표는 “저는 대통령과 자주 만나 3시간씩도 이야기한다. 하루에 3~4번씩 전화도 한다”고 윤심(尹心)을 강조했다.
비윤계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대표 권한을 모두 행사할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을 것데, 그렇지 않은 걸 보니 총선 간판 욕심은 다소 내려놓은 것 같다”며 “이해찬 모델처럼 총선을 치른다면 김 대표가 대표직 유지와 지역구 재출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지난 3일 지도부·중진·친윤을 향해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를 권고했던 인요한 혁신위는 최근 자중지란 상태다. 3주 넘게 권고 대상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30일 혁신위 전체회의 정식 의결을 통해 안건을 최고위에 넘기겠다고 예고했지만 박소연·이젬마·임장미 혁신위원 3명이 ‘사퇴 카드’를 꺼내며 혁신위 내부가 혼란에 빠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혁신위 기세가 꺾이면서 혁신위가 정식 의결을 해도 최고위가 내용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왼쪽)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한 식당에서 오찬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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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 동력이 꺾이면서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대위 전환 카드’도 점차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지난 23일 의원총회 때 윤석열 대선 캠프 수행실장 출신인 이용 의원은 “김기현 체제로 똘똘 뭉치자”고 공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물리적 시간도 촉박한 상태다. 김 대표는 내달 중순 공천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켜 당을 빠르게 총선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당내에선 ‘이해찬 모델’에 대한 반박도 제기된다. “이해찬 전 대표는 일찍부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선당후사’ 공감대를 쌓았지만 김기현 대표는 아무 액션도 없는 상황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말할 정도로 승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고 총선에서 빠진 것도 전략적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며 “김 대표에겐 그런 진정성이 잘 보이지 않아,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당내에선 “김 대표의 결단은 시간 문제일 뿐”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김 대표 측은 줄곧 “공천 시점이 다가오면 얼마든지 결단할 수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강조해 왔다. 여권에선 “김 대표가 먼저 결단하면 험지 출마를 요구받은 친윤계와 중진 역시 연쇄적으로 김 대표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적잖게 나온다.
김 대표 체제에 부정적인 이준석 전 대표도 26일 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가 (지역구) 의정 활동을 다니는 건 아마 큰 결단을 앞두고 지지자를 만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저는 김 대표가 명예로운 판단을 할 거라고 보고, 거기에 더해 당을 망친 인사들의 판단도 가속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대표의 선택에 많은 게 달렸다”고 했다.
김준영ㆍ전민구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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