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대비 물가 낮다” 강조한 정부 ‘머쓱’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먹거리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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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2%, 한국 3.8%’
지난달 미국과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뒤집혔다. 2017년 8월 이후 장기간 한국을 웃돌던 미국의 물가 오름폭이 6년 2개월 만에 한국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 등 주요국에 견줘 낮은 물가 상승률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던 정책 당국도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15일 미국 노동부 자료를 보면,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2% 올랐다. 앞선 지난해 6월 9.1%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올해 6월 3.0%로 연중 저점을 찍고 7월 3.2%, 8·9월 3.7%로 상승폭이 다시 확대됐다. 그러나 10월 들어 오름세가 뚜렷하게 꺾인 셈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펴낸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은 최근 2개월간 물가 상승을 견인했던 에너지 가격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주거비 상승세 둔화, 자동차 가격 하락 등으로 (수요 쪽 물가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 인플레이션의 하방 경직성도 완화된 모습”이라고 짚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2.9%로 2년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물가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올해 7월 2.3%에서 8월 3.4%, 9월 3.7%, 10월 3.8%로 3개월 연속 오름폭을 키워가고 있다. 이동재 한국은행 물가동향팀 과장은 “미국은 지난해 이맘때 에너지·식료품 가격이 워낙 많이 올랐던 터라, 그 기저 효과로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유럽 등은 지난해 에너지 등 주요 품목의 물가 오름폭이 컸던 만큼 하락하는 폭도 깊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머쓱해진 모습이다. 그간 한국의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빠른 안정세를 보인다며 정책 효과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국내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간 지난 6∼7월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과 주요 20개국(G20) 중 2%대 물가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소수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취임 당시 ‘물가 안정’을 경제 운용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10월 물가 안정론’이 빗나가며 무색해진 상황이다. 추 부총리는 통계청의 ‘10월 물가’ 발표 전인 지난달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의 물가와 경제 성장률은 선진국 대비 선방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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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농식품부 등 정부 부처들은 물가 현장 관리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날도 농식품부 권재한 농업혁신정책실장은 농심 서울 본사를 찾아 “대표 품목인 라면, 스낵 과자 등의 가격 안정화와 체감 물가 완화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했다. 홍두선 기재부 차관보도 이날 소비자 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꼼수·편법 인상, 과도한 가격 인상 등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경제 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국장들도 현장을 가라고 하는데 대체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같은 행보를 ‘제자리 뛰기’에 빗대기도 한다. 현장 방문의 물가 안정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걸 관료들도 잘 알지만, 상부 압박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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