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서부 지역 그레벤브로이흐에 있는 갈탄 사용 화력발전소에서 흰 연기가 치솟고 있다. 그레벤브로이흐/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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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기업들의 탄소 중립 실현을 강제하기 위해 지난해 제안한 법안의 규제 대상에서 금융 기업을 제외할 움직임을 보여, 환경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유럽연합은 세계의 기후 변화 대응을 선도해왔는데, 최근 경제 위기 등을 계기로 잇따라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14일(현지시각)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서 ‘기업 지속가능성 주의 (의무) 지침’의 규제 대상에서 금융 기업들을 제외시키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이 입수한 비공개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현재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을 맡고 있는 스페인 정부가 이 지침 제정을 둘러싼 회원국들간의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지침 시행 초기에는 금융 기업에 한해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타협안을 제안했다.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연합에서는 금융이 주요한 탄소 유발 업종으로 꼽힌다. 유럽연합의 은행과 증권사 등은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 개발 사업이나 산림을 훼손하는 농업에 투자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 지침은 지난해 2월 2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기업들에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인권과 환경을 고려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지침의 적용 대상 기업은 유럽연합 소속 기업 1만2천곳과 유럽연합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제3국 기업 2600곳 정도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의 지침은 세부 사항을 명시하는 ‘규정’과 달리 회원국에게 특정한 목표를 제시하고 관련 법률 제정을 개별 회원국에 일임하는 법령이다.
집행위원회의 지침안 공개 이후 회원국 사이에서 이견이 표출되면서 지침안 확정을 위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유럽의회쪽 협상 대표인 르네 레파시 의원은 “프랑스가 (금융 기업 면제를) 이끄는 국가”라며 “협상 초반에는 모든 회원국이 금융 기업 포함에 동의했으나 프랑스가 막판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환경단체들은 금융 기업을 지침 시행 초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 유럽의회 선거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추가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비영리 환경 단체 ‘세계 벤치마킹 연합’의 유럽연합 정책 담당자 리처드 가디너는 “금융 기업 배제는 유럽의회, 집행위원회, 대다수 회원국의 주류 의견에 반하는 것”이라며 “금융 기업을 배제하면 변화를 이끌 주요 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침안 협상 과정에서 기업들에 부과할 의무를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애초 초안은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 높은 수준 이내로 억제한다는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기업들에게 준수하도록 했으나, 회원국들은 기업들이 이 목표에 맞춰 준수 ‘계획’을 채택하도록 하는 수준으로 규정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 목표를 실현할 계획만 세우면 계획을 이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환경단체 ‘지구의 벗’ 유럽 지부의 캠페인 담당자 알방 그로스디디에는 “이는 위장 친환경(그린워싱) 허가를 내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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