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검찰과 법무부

‘대통령 명예훼손’에 특별수사팀 꾸린 검찰, 두 달째 언론사·기자 수사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뉴스타파 직원들이 지난달 14일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뉴스타파 본사를 찾은 검찰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상대로 수사를 벌인 지 두 달이 지났다. 검찰은 2021년부터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 보도된 2011년 대검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관련 기사로 ‘윤석열 대통령이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며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 두 달간 언론사 5곳, 전·현직 기자 7명을 압수수색했다.

여러 언론 현업단체는 대선을 앞두고 후보나 공인에 대한 검증 성격이 있는 보도를 명예훼손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책임을 묻겠다는 검찰의 발상은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도 드물지만 최고권력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이 대대적으로 언론사와 기자를 수사하는 경우는 형사사법체계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학계·법조계 인사들은 “민주국가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 “전근대 사회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했다.

검찰, 의혹 스스로 허위 판단 후 직접 수사까지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월7일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 대상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대출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김만배씨 소개로 박영수 전 특검을 변호사로 선임한 대출 알선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부실하게 했거나 무마했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한 여러 보도들이다. 수사 대상이 된 기자 등은 대선후보 또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2011년 대검 중수2과장으로 부산저축은행 수사의 주임검사를 지냈다.

검찰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십여년 전 검찰 내부 상황에 대한 의혹 제기를 검찰이 스스로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내린 뒤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을 두고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5일 “‘검찰 수사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의혹 보도를 허위로 몰아서 오히려 이해당사자인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의혹이 거짓이라면 투명하게 의혹을 해소하고 해명하면 될 일이지, 합리적인 정황과 근거를 통해 나온 보도가 허위라며 형사처벌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의혹이 사실이 아닌 점을) 어떻게 검찰 내부적으로 확인했는지 밖에서는 알 수도 없다”고 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 수사 때 수사라인이던 박모 검사, 윤 대통령, 김홍일 권익위원장(당시 중수부장)을 모두 조사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수사라인의 모든 사람을 다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 당시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사람을 상대로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피해자인 사건을 대통령 휘하 정부기관인 검찰이 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의견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실은 이 사건을 ‘희대의 대선 공작’으로 규정하는 등 엄중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진 터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 특임교수는 “검찰이 완전히 독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형사사건으로 가져가는 것은 오용될 소지가 있다”며 “(명예훼손죄가) 정치의 무기화나 권력의 도구로서 사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무리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면 대통령이 처벌의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게 대통령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고 책무”라고 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원은 “정부·국가기관 명예훼손죄 피해자 안돼”


법조계에선 명예훼손죄가 성립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정부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 사건 판결이 대표적인 예다. <PD수첩>은 2008년 4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은폐·축소한 채 수입 협상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으나 법원은 1·2·3심 내리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하면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보도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해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보도 내용이 시민이 알아야 할 공적 사안인지,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지 등을 엄격하게 따져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를 판단한다. 또 보도 내용에 일부 허위가 포함됐다거나 다소 과장된 내용이 있다고 해서 명예훼손죄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입장도 취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보도 내용이 허위일 뿐 아니라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류신환 변호사는 “권력자나 공인, 공직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과 의혹 제기가 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게 법원의 확립된 법리”라며 “이 사안은 나중에 재판에 가더라도 합리적인 법원이라면 유죄 판결을 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사 만으로도 위축되는 언론·표현의 자유


문제는 검찰의 수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언론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광범위한 압수수색은 기자의 취재원 비닉권(신분을 비공개할 권리)을 정면으로 침해한다. 윤 대통령도 국민의힘 대선후보 때인 지난해 2월12일 정책·공약 홍보 열차 ‘열정열차’ 안에서 “기자에게 ‘네 기사가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라’라고 하면 기자는 취재원을 밝혀야 하는데, 취재원 보호가 안 되면 권력 비리에 대해서 (보도)할 수가 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취재원을 밝히기 위한 언론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부득이하게 언론을 압수수색하더라도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어 언론사와 기자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무방비 상태다.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언론의 권력자에 대한 감시, 견제 기능을 대폭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은 일련의 보도들 배후에 대장동 개발 민간업자 김만배씨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보라미 변호사는 “명예훼손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취재원 비닉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 형태로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게 되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도 침해된다”며 “국가기관이 형사처벌을 통해 직접 표현행위에 손을 뻗어서 ‘해라, 마라’ 하는 것은 후진국가에서나 이뤄지는 일이다. (검찰이) 이렇게 손을 대면 앞으로 기자들이 정부를 비판하거나 선거기간에 검증 기사를 쓸 수 있겠냐”고 했다.

류신환 변호사는 “기자로서는 진실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려 뛰어다니고, 그중에 신뢰가 가는 정보를 기초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데 다 모종의 의도를 갖고 공모했다고 검찰이 범죄로 구성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공인에 대한 비판은 허용돼야 한다는 우리 법의 기본원칙을 뒤집는 방식으로 국가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국면”이라며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문제제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엄밀한 입증을 요구하는 명예훼손죄 수사 자체가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분석도 있다. 기준과 시각에 따라 어떤 기사가 허위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 허위성 판단의 권한을 검찰이나 법원 등 국가기관에 주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허위인지 아닌지는 사회적 토론과 논란을 통해 정리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것이 사실의 재구성인데, 지금 한국은 감시와 비판으로서 검증해야 되는 것을 전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설령 형사처벌을 할지언정 그 논란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로서의 종결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사가 취재를 하고, 개별 보도들에서 단서가 나오면 거기에 또 다른 취재가 더해지는 과정을 통해 전체적으로 의혹의 사실 여부가 판단된다”며 “그 중간에 있는 하나의 보도, 하나의 인터뷰를 뽑아내고 잘라내서 허위라고 해버리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언론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운영하는 기본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수차례 한국에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를 촉구해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