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조사위, 진상규명 조사 결과 발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30일 열린 제100차 전원위원회에서 이창용·손성모 간첩 사건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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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는 당시 정보당국과 경찰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에 대한 조사, 담당 수사관 등 대인조사 및 이창용의 행적 관련 현지조사 등을 진행했다.
이창용은 5·18민주화운동 직전인 1980년 전남 보성으로 침투 후, 같은 달 23일 서울역에서 주민신고로 검거됐다.
검거 당시 이창용이 독침 앰플 자살 시도 실패 후, 혀를 깨물어 혼절하는 등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었는 데도, 서울시 경찰국은 검거 다음 날 ‘광주 시위 선동 남파 간첩’으로 서둘러 발표해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하게 한 사실을 조사위는 확인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선동으로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하나의 사례가 됐다고 판단했다.
간첩 이창용은 단선된 고정 간첩망 복구와 지하당 구축 임무 등을 갖고 남파된 간첩으로 확인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간첩 손성모는 1980년 5월 4일 전남 해남으로 침투 후, 전국의 사찰을 전전하다가 1981년 2월 15일 주민 신고로 경북 문경 혜국사에서 붙잡혔다. 몇 년 전 한 북한이탈주민 작가가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 침투했다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을 무등산 증심사에서 지휘했다고 논픽션 책자를 통해 주장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조사위는 손성모의 수사기록 및 공판기록, 방첩사 사건기록 등과 수사관 등 대인조사 및 현지조사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간첩 손성모가 불교계에서 암약하기 위해 사전 치밀한 장기 교육을 받고 승려로 위장 침투해 1981년 2월 체포되기 전까지 전국 약 34개 사찰을 전전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무등산 증심사가 아닌 전북 남원 서진암에 머물렀고 경찰의 소위 취약지 일제 검문이 있자 경북 문경 혜국사로 거처를 옮긴 후 전국의 사찰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가 1981년 2월 체포됐다고 전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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