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3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로텐더홀에 모여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난 24일 본회의장 내에서 피켓과 고성을 금지하기로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었지만 “(여야 합의가) 회의장 밖까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는 건 아니다”(윤영덕 원내대변인)는 이유를 들면서였다. 민주당은 ‘민생경제 우선’, ‘국정 기조 전환’ 등의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윤 대통령을 맞았다. 당초 피켓을 들되 목소리는 내지 않는 침묵 시위로 진행하려 했지만, 국회에 들어선 윤 대통령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자 참지 못한 일부 의원이 고성을 내질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나칠 땐 “뒷문으로 들어와!”라는 야유를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서며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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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이날 시정연설 내내 여야 협정 파기와 준수의 경계선을 오갔다. 민주당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본회의장 밖의 피켓 시위를 놓고 “신사협정 파기가 맞다”는 주장과 “파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맞붙었다. 결국 격론 끝에 “여야가 협상할 때부터 ‘로텐더홀에서 하는 건 막지 말자’고 했기 때문에 신사협정 파기는 아니다”(민주당 고위관계자)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 민주당은 이날 피켓 시위를 감행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고위관계자는 “이전과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민주당은 저럴 거면 신사협정은 왜 했느냐”는 불만을 표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공식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이 여야가 협치를 위해 맺은 신사협정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있다”며 “고성과 야유를 중단하자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과거의 구태로 되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성과 아유 중단’이란 신사협정이 그나마 지켜진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 사이엔 냉기가 흘렀다.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부터 불편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기 전 민주당 의원 쪽 통로를 지나가며 의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으나,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형식적으로 손을 잡았다. 이형석 의원은 회의장 정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손만 건넸고, 임종성 의원은 고개를 아예 왼쪽으로 돌린 채 손을 잡았다. 일종의 ‘노룩 악수’를 한 셈이다. 천준호 의원은 윤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다가갔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윤 대통령은 멋쩍은 표정으로 천 의원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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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마칠 때까지 야당은 박수 치기를 거부했다. 민주당 강경파로 분류되는 정청래·양이원영·김용민·황운하 의원은 침묵 시위 때 주로 착용하는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회의장에 자리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법무검찰개혁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용민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연설 뒤 회의장을 돌며 인사할 때 “인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말을 건넸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연설 중 아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자거나, 지루하다는 듯 기지개를 크게 하며 하품하는 민주당 의원도 보였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는 피켓을 내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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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은 윤 대통령과 눈을 마주친 채 두 차례 악수했다.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한 차례 이 대표의 손을 잡았던 윤 대통령은 연설 뒤에도 다시 이 대표와 악수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먼저 다가오자 가던 길을 다시 돌아가 이 대표와 손을 맞잡았다. 이때는 옆에 있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시작하면서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보다 이 대표를 먼저 호명하며 배려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27분 20초간의 윤 대통령 연설 도중 32번 박수 갈채를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뒤엔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윤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와 6분가량 장내를 돌 때도 일제히 윤 대통령에게 모여들어 인사했다.
시정연설에 대한 평가를 두고도 여야는 대립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윤 대통령의 맹탕 시정연설에 국정실패에 대한 반성은 커녕 국민의 절박한 삶과 위기 극복의 희망은 없었다”고 혹평하자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협치를 위해 대통령이 내민 손을 매몰차게 거부하더니 민생 예산을 위한 대통령의 호소를 ‘맹탕연설’이라고 폄훼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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