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전원일치 기소유예 취소
레드카드 옆에 이름표 부착 담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 관련
“혐의 인정한 검찰 처분 잘못”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지난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재판부는 “기소유예 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기소유예는 죄를 짓긴 했지만 굳이 재판에 넘길 정도는 아니라고 검찰이 판단해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이다. 불기소 처분에 해당하지만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재판에만 넘기지 않는 것이어서, 당사자는 헌법소원을 통해 ‘혐의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고 다툴 수 있다.
A씨는 2021년 한 초등학교에서 학급 담임교사를 맡았다. 교실 칠판에 레드카드를 붙이고 수업시간 잘못한 아이들의 이름표를 레드카드 옆에 붙인 후 이름표가 부착된 아이들로 하여금 방과 후 자신과 함께 교실 청소를 하고서 하교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그해 4월 학생 B가 마시다 남은 페트병을 손으로 비틀어 큰 소리를 계속해 내자 B의 이름표를 레드카드 옆에 붙였다. 이 일이 발생한 후 B의 어머니가 학교 측에 항의하고 신고해 수사로도 이어졌다. B의 어머니가 담임교사 교체 등을 요구하면서 민원을 제기하자 학교 측이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 조치를 했고 이에 B의 어머니가 해당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도 진행됐다.
경찰은 2021년 11월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2022년 4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가 레드카드 있는 곳에 B의 이름표를 붙이고, 약 14분간 교실 청소를 시켜 정서적 학대행위를 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에 해당하긴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A씨는 지난해 8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우선 A씨가 B를 하교시키지 않고 남긴 후 14분간 교실 청소를 시킨 사실 자체부터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B의 어머니가 제기한 소송 사건을 언급하면서 “대법원은 A씨가 B로 하여금 방과 후 교실 바닥을 청소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이에 관한 A씨의 묵시적·명시적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B의 진술만으로 A씨가 남아서 청소를 하라는 명시적 지시를 했는지, A씨와 학생들 사이 레드카드 제도에 대한 약속이 확고해 묵시적 지시에 이르게 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또 헌재는 A씨가 레드카드 옆에 B의 이름표를 붙인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가 레드카드를 이유로 A씨를 ‘나쁜 선생님’ 등으로 진술한 사실에 비춰보면 차별 등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 아닌지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 기록에는 B의 반응을 유발한 A씨 태도와 행위가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B가 당시 낙상사고, 학교폭력 피해 등 다른 사건도 경험했는데 B의 결석이나 증상 진단이 레드카드로 인한 것인지, 다른 사건으로 인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가 조사 없이 이 사건 기록만으로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구성요건에 해당됨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한 것은 중대한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14일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B의 어머니가 학교장을 상대로 낸 교권보호위원회 조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반복적 담임교체 요구 행위가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으로, 대법원은 이같은 법리를 최초로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안대용 기자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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