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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만화와 웹툰

흑인 비하 버젓이... 인종차별 '참교육' 받은 웹툰 [K컬처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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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웹툰 '참교육' 북미 서비스 중단 사태로 본 K 세계화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성상민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한국일보

웹툰 '참교육'. 네이버웹툰 제공


한국 문화 전반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네이버웹툰 '참교육'이 지난달 10일 미리보기로 공개했던 125화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 회차엔 인종차별적 내용과 아프리카계 혼혈 남학생을 상대로 백인 혼혈 남학생이 영어로 '깜둥이'란 뜻의 흑인을 비하하는 욕설이 담겼다. '참교육'은 체벌 금지법 도입 후 교권이 붕괴해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이 신설되고 감독관들이 학교에 파견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웹툰으로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문제가 된 회차는 국내에서 먼저 공개됐다. 북미에서 정식 공개되기 전 이 내용이 번역본으로 불법유통돼 해외로 퍼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복자 처리를 했어도 인종차별 용어를 사용한 것과 흑인 혼혈 캐릭터가 인종차별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전개가 모두 부적절했다는 비판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 웹툰을 좋아했다는 한 흑인 여성이 직접 얼굴을 공개하고 인종차별적 설정과 표현에 실망했다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네이버웹툰은 지난달 16일 북미 플랫폼에서 '참교육'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내에서도 해당 회차를 삭제한 뒤 장기 휴재를 결정했다. "스토리 정비 차원"이 그 이유였다. 이 웹툰은 27일 기준 여전히 휴재 상태다. 세계화를 내세워 야심 차게 해외로 진출하려 했는데 정작 글로벌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철수한 셈이다.

'참교육'의 북미 시장 퇴출 사례는 한국 문화 산업의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커졌어도 여전히 행태는 변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2 콘텐츠산업백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 연간 수출액은 2021년 118억 달러로, 2005년 대비 5배나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드라마 '킹더랜드'가 아랍문화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켜 제작진이 사과했고,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0)은 베트남 전쟁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현지 넷플릭스에서 퇴출됐다. 한국 문화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해 해외에서 비판이 잇따르는 실정이다.

콘텐츠 관련 업계 근무 환경도 조직 내 문화적 다양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잡음이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2016년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 출연한 성우와 지난 7월 게임사 프로젝트 문이 개발한 게임 '림버스 컴퍼니' 작업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가 SNS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려 구설에 오른 뒤 계약이 잇따라 종료된 게 대표적 사례다. 두 창작자의 계약 종료는 일부 게임 사용자들이 회사에 찾아가 작업 배제 등을 요구하며 항의한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젝트 문은 "논란이 된 작업자에게 사상적인 이유를 문제 삼지도, 해고 통보를 하지도 않았다"며 일러스트가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해명 뒤에도 논란의 불길은 쉬 꺼지지 않았다.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지부인 경기청년유니온 등 일부 시민단체는 게임 회사를 비판했다. 게임 회사가 여성 혐오 세력으로부터 종사자를 보호하는 대신 오히려 혐오 세력에 편승해 종사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림버스 컴퍼니'는 해외에서도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거느린 게임이었다. 이 사안이 해외 사용자에게까지 알려지면서 밖으로까지 잡음은 이어졌고, '남성 혐오' 의혹에 휘말려 잇따라 제작자들이 관련 프로젝트에서 하차한 한국 게임 업계의 현실을 황당해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이 사적영역에서 드러낸 사회적 지향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느냐에 따른 의문이었다. 이 논란의 여파였을까. '림버스 컴퍼니' 국내외 사용자 수는 7월 25일 8,312명(스팀DB)에서 10월 25일 기준 4,586명으로 줄었다. 7월 25일은 프로젝트문이 일러스트레이터 직원의 계약 종료를 알린 날이다.

세계화에 걸맞게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콘텐츠와 제작 현장을 갖추지 않는다면 누가 한국 문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지금 한국 문화 산업에 필요한 것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운 덩치에 어울리는 행동 규범의 정착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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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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