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간지 1년이 흘렀는데 이제서야 왔네. 1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던 청년들이 내일을 맞이하지 못 할거란 걸 예상했을까요? 잊지 않겠습니다.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4대 종단 기도회에 참석한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보자 오열했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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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 29일,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인근 골목.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벽을 가득 메웠다. 유가족과 시민 등 3000여명(주최측 추산)은 이날 오후 이곳에서 출발해 서울광장까지 걸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보라색 점퍼를 맞춰 입은 이들의 행렬은 마치 보라색 물결이 길을 따라 흐르는 듯했다. 행진은 2시간 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도착한 서울광장에서도 159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159개의 보라색 별이 빛을 뿜어 분향소를 환하게 비췄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참사 유가족 및 시민들이 추모시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방면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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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주기 추모대회가 진행된 이태원 현장과 서울광장에선 이날 내내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오후 2시쯤 4대 종단 기도회 참석을 위해 이태원역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인파가 밀집에 대비해 역안에 붙여 놓은 이태원 골목 안내도를 보곤 “진작에 붙여 놨었더라면…”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참사 현장을 마주한 한 유가족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말과 함께 길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기도회 도중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삼키거나, 눈물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헌화하는 유가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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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가 끝나고 오후 3시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일부 유가족은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든 채 “국가 책임 인정하라. 이태원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대통령실 앞을 지날땐 행진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마주보고 마이크를 든 고 유연주(참사 당시 21세)씨 아버지 유형주(53)씨는 “추모대회는 정치 집회가 아니다. 자리를 비워둔 채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숭례문을 지날 즈음엔 ‘멸공’ ‘통일’ 등의 문구가 적힌 검은색 SUV 차량을 탄 사람들과 유가족 간에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경찰이 빠르게 막아서며 큰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로 추정되는 이도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포스트잇엔 ″1년 전 그 자리에 그 시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부디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있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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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쯤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먼저 모여 있던 시민들이 박수로 맞이했다. 이후 묵념과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의 발언, 시민대책위원회·생존자·정당 대표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한다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거고 더 이상 유가족도 없을 것이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건 이태원 특별법 제정이다. 여야가 진정성 있는 자세로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또 2014년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과 2001년 7월 발생한 일본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 등도 무대에 올라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아카시시 참사로 2살 아들을 잃은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제가 겪은 사고와 너무 유사한 부분이 많아 가슴이 아팠다”며 “유가족들이 조금씩이라도 앞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말했다.
이날 추모대회는 오후 7시 40분쯤 헌화식으로 마무리됐다. 유족들이 영정 앞에 국화를 놓는동안 무대에선 유가족이 공개를 동의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명씩 불렀고, 시민들은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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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유가족 위로한 시민들…생존자도 찾아 추모했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장서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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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대회를 앞둔 오전, 그리고 저녁까지도 서울광장 분향소로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 한쪽 벽은 추모 메시지가 적힌 메모지가 가득 채웠다. “1년 전 그 자리에 그 시간에 함께 있던 사람이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과 같이 참사 생존자가 남긴 걸로 보이는 메시지도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박모(59)씨는 영정에 헌화한 뒤, 유가족을 꼭 안으며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상처받지 말고 다시 일어섰으면 한다”고 위로했다. 전남 신안에서 인테리어샵을 운영하는 성모(64)씨는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이들을 추모하려고 가게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태원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종일 추모객들이 몰렸고, 일부는 꽃·과자·술 등을 현장에 놓고 갔다.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골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은 채 눈물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대학생 정모(26)씨는 “희생자 대부분이 제 또래다. 꿈을 다 펼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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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도 두 장소에서 시민들을 맞았다. 처음 보는 시민과 손을 꼭 마주 쥔 채 고개 숙여 함께 울거나, 물과 음료 등을 전달하며 감사를 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 이해린씨(참사 당시 25세) 아버지 이종민(54)씨는“어쩌면 슬픈 날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셔서 힘도 났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서울광장 등을 찾았다. 국민의힘에선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이만희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참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고, 추모대회 이후엔 이태원 현장을 찾아 거리 상황을 점검했다. 또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전 10시 30분쯤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아 “이태원 특별법 제정은 정쟁 사항이 아니니 국회의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이란에선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러시아에선 올가 아파나시에바 주한 러시아 대사관 영사가 추모대회를 함께 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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