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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잊히지 않길’ 광장에서 보낸 해린씨의 보랏빛 생일[이태원 참사 1주기-③4개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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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해린씨의 생일이던 지난 9월17일 전남 목포의 추모관.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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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이럴 때 어째야 하지.”

“마음속으로 말하면 돼.”

지난 9월17일 오전 11시, 전남 목포시의 추모관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해린씨의 어머니 김이순씨가 머뭇거리자 둘째 딸 이해주씨가 엄마를 다독였다. 탁자에는 큰딸이 좋아하는 엄마표 도라지나물과 파김치, 간장치킨이 놓였다. 26번째 생일을 맞지 못한, 해린씨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생일케이크는 동생 해주씨가 준비했다. 초에 불을 붙인 아버지 이종민씨가 영정을 바라보며 “해린아 많이 먹어라”라고 말했다. 촛불을 함께 불어 끈 친척들과 친구들은 빼곡히 놓인 해린씨 사진을 보며 저마다 가진 그와의 추억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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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린씨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음식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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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씨는 두 살 터울 언니의 유골함 바로 앞에 ‘영원히 함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문구를 새긴 반지를 놓았다. ‘언니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이자 바람을 담아 한 쌍으로 반지를 만들었다. 남은 한쪽 반지는 자신의 왼손에 꼈다. 부모도 각자의 방법으로 큰딸을 기억한다. 아빠는 해린씨의 방 벽에 사진과 편지를 붙여뒀다. 엄마는 딸이 쓰던 휴대전화를 여전히 충전한다. 해린씨의 생일을 하루 앞둔 이날 단체채팅방은 친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로 가득 찼다.

인천의 대학병원에서 3년 차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던 해린씨는 지난해 10월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건강 챙기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딸이었다. ‘10월 마지막 주 목포 집에 갈게’라던 딸 대신 가족을 찾아온 것은 오전 1시쯤 걸려 온 경찰의 전화였다. 사망 시각은 오전 12시10분. 가족은 친구와 이태원에 놀러 간 해린씨가 그 골목 어디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죽음에 내몰렸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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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씨는 큰딸 해린씨의 방에 사진과 편지를 붙여뒀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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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린씨를 만나고, 가족은 다시 광주로 향했다. 이날 오후 광주 비엔날레광장에서 참사 진상규명 부스를 열기 위해서였다. 차로 1시간, 광주행은 일상이 됐다. 지난 6월24일부터 참사 1주기 전날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해린씨네와 광주 가족들은 광주 시내를 행진했다. 시민분향소가 있는 서울을 찾는 일도 잦아졌다. “서울이 그리 가까운 줄 알았더라면, 더 자주 갔을 텐데. 왜 많이 보러 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자주 서울을 찾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인천에 있던 딸을 더 자주 보러갔어야 했다고 종민씨가 말했다.

언니처럼 간호사를 꿈꾸는 해주씨는 참사 1주기까지 취업을 1년 미뤘다. 참사 300일째 국회로 향했던 삼보일배도, 광주 시내 행진도 매번 함께했다. 해주씨는 “참사를 한 명이라도 더 기억했으면 한다”면서 “이렇게 안 하면 죄책감이 심할 것 같고 1년은 지나야, 일을 시작하더라도 마음의 짐이 덜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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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씨가 광주 비엔날레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이태원 참사를 기리는 보라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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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광주 비엔날레 광장에 도착한 가족은 익숙한 듯 보라색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네 가족도 합류했다. 아빠들이 보라색 부직포를 자르면 엄마들이 리본 모양으로 접어 접착제를 찍었다. 완성된 리본은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고 쓰인 봉투에 담겼다.

“안전한 사회를 염원하신다면 이태원 참사를 잊지 말고 응원해주십시오.” 종민씨는 광장의 시민들에게 특별법 소개 책자와 리본을 나눠줬다. 찌푸린 얼굴을 대하더라도 이제는 의연하게 다가간다. 지난봄 광주 우체국 앞에서 처음 진상규명 전단지를 나눠주줬던 날, 전해 받은 시민이 곧장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보고 종민씨는 30분을 울었다. 이제 그 정도 홀대로는 다치지 않는다. 오랜 거리 생활로 마음은 단단해졌다. “오늘은 그래도 잘 받아주시네요.” 종민씨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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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순씨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보라리본을 만들고 있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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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유가족이 거리에 나와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이유를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종민씨는 “‘국회에 법이 올라갔는데 왜 계속하냐’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분들은 다 끝난 줄 안다”며 “100명 중 1명이라도 기억해준다면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7시, 해가 넘어갈 때까지 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외치며 보라색 리본을 만들고 나눠줬다. 얼마나 많은 리본이 더 필요할까. 종민씨는 “해린아. 진상규명이 아직이지만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있거라. 그곳에선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놀고 있으면 좋겠다.”




☞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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