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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1년…"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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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함→분노→우울함→희망으로 변해간 1년의 기록

김초롱 에세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22년 10월 29일. 청년 A씨는 군필자라서 심폐소생술(CPR)을 할 줄 알았다. 그는 지체 없이 CPR을 하며 도왔다. 어느 순간 자기 앞으로 온 환자를 보고 그는 얼어버렸다. 몸과 얼굴이 망가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A씨는 CPR을 더 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는 이후 죄책감 때문에 울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참사 당일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 씨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리학회 상담사가 들려준 A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씨의 입에서는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였어도 그랬다."

2016년부터 빠지지 않고 참가한 핼러윈 행사였다. 김씨는 한 달 전부터 해외 직구 사이트를 돌며 의상을 찾았다. 어떤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할까, 어떤 캐릭터를 연출할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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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사고 당일,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으로 걸어가면서 사탕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 "콘헤드 분장"을 하고 몰려가는 가족들, 건장한 아이 여섯 명이 녹색 어머니회 분장을 하고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기대는 부풀었다.

1990년생인 김초롱 씨에게 핼러윈은 그런 날이었다. 신기한 분장을 보고,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명절과 같은 날.

그러나 참사 현장을 목격한 그날부터, 김씨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온몸이 떨렸다. 이틀 내내 잠을 미루며 그는 미친 듯이 뉴스 화면만 쳐다봤다.

그러면서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귀여운 텔레토비 친구들에게 꽂혀서 바로 뒤로 사람이 실려 가고 있었음을 몰랐다는 "무지함", CPR을 해달라는 요청을 듣고도 모른 척한 "비열함", 놀았던 흔적을 인스타에 올렸다가 삭제한 후에 밀려든 "창피함"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들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우울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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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게티이미지뱅크. 재판매 및 DB금지]


제대로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잘 수도 없었다. 미친 듯이 집에 가고 싶었지만, 정작 집에 들어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위스키 한 병씩 매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토사물이 입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엔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갑자기 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 바지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서서 소변을 싼 것이었다. 지나가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후드티를 허리에 둘러주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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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초롱
[아몬드 제공.ⓒ 이생. 재판매 및 DB금지]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김씨는 조금씩 회복해간다. "구겨진 마음을 곱게 편다고 생각하라"며 아는 언니가 추천해 준 다림질, 청소 아르바이트가 마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

"고통을 이겨내거나 극복하지 못했다. 그냥 그때그때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했을 뿐"이라고 말한 친구의 말도 도움이 됐다. 부모의 잇따른 질환으로 꿈을 포기하며 힘든 시절을 겪은 친구였다.

김씨는 주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생환할 수 있었다. 특히 베이비시터 일은 그에게 다시 한번 살아가라는 희망의 빛을 던져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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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아몬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 된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나는 내내 행복했다……아기가 분유를 먹는 모습, 아기 냄새, 아기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내게 위로를 주었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건 그 자체로 감동인 거구나 싶었다. 그 순간 나도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초롱 씨가 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아몬드)는 이태원 참사를 겪고 나서 절망에 빠졌던 한 사람이 다시 생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창피함, 분노, 우울함, 희망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감정 변화가 글에 묻어난다.

32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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