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연금과 보험

늦기 전에 얼리자? 난자동결은 보험일까 복권일까[딥다이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을 수 있으니 일단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를 얼려놓자.’ 이런 생각하는 미혼 여성들이 빠르게 늘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난자동결 시술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난자동결은 여성의 선택지를 넓혀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일까요. 아니면 자칫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는 비싼 복권일까요. 엇갈리는 연구 결과와 통계들이 나오는데요. 마침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연구와도 맞물린 주제, 난자동결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동아일보

일단 얼려두면 안심일까? 난자동결 시술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게티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난자동결의 전 세계적 인기

난자동결은 말 그대로 난자를 꺼내 냉동 보관하는 겁니다. 나중에 이를 다시 해동해 시험관 시술에 써서 임신하기 위해서죠.

생소한 분들을 위해 과정을 좀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난자동결 시술 과정엔 총 2주 정도가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호르몬주사를 하루 한 번 배에 찔러넣어 난소를 자극하죠. 난자가 평소(1달에 1개가 성숙돼 배란)보다 더 많이(보통 7~14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배란되기 직전 시점을 골라 난자를 채취합니다. 질을 통해 넣은 주삿바늘로 난소를 십여 차례 찔러가면서 말이죠. 꽤 아프기 때문에 보통 수면마취를 합니다. 채취 당일은 쉬어야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아마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겁니다. 1회 시술 비용은 한국이라면 200만~500만원, 미국은 5000~1만 달러 수준입니다.

어떤가요. 간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 싶으신가요. 아시다시피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이 떨어져 임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젊을 때 난자를 냉동시키는 건 ‘생식력 보존’을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통계로 보면 필요한 시간과 돈,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증가세가 놀라운 수준인데요. 미국의 경우 4년 만에 73% 늘었고요(2016년 7193명→2020년 1만2438명). 영국은 최근 2년 만에 64%나 증가했습니다(2019년 2576건→2021년 4215건).

그럼 한국은? 얼마 전 차병원그룹이 통계를 공개했는데요. 2020년 574건이던 난자동결 시술 건수가 지난해엔 1004건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2년 증가율 75%).

얼리면 마음 편하다?

난자동결이 왜 이렇게까지 급증하는지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일단 결혼이 점점 늦어진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고요. 코로나 영향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데이트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이러다가 당분간 짝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난자동결을 결심한 사람이 늘어난 거죠.

또 다른 유력한 원인은 이겁니다. 마케팅. 사실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흔하진 않을지 모르겠는데요. 미국에선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SNS에서 불임클리닉의 난자동결 시술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물론 미혼 여성만 타깃으로 광고를 띄움). 주로 인플루언서가 직접 나와 자신의 시술 경험을 공유하는 식이죠. 마치 치아미백이나 피부미용 시술 사례를 홍보하는 것과 비슷한데요.
동아일보

미국의 한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협찬 받은 난자동결 시술을 광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임클리닉이 이런 광고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난자를 얼리면 임신능력 저하에 대한 걱정을 잊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의 커리어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영영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여성의 마음(또는 본능)을 꿰뚫어 본 겁니다.

1980년대 이후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이 여성 근로자의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킨 건 사실입니다. 이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의 주요 연구업적 중 하나인데요. 지난 100년의 미국 대졸 여성을 세대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보조생식술의 등장으로 일과 아이, 둘 다 가진 고학력 여성이 전보다 늘어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197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피임약이라는 혁명을 맞이합니다. 덕분에 경력 단절 없이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됐죠. 혼전임신이 확 줄면서 결혼 자체를 미룰 수 있었으니까요. 대신 이들이 잃은 게 있습니다. 결혼이 늦다 보니 출산 시기를 아예 놓쳐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이 세대의 고학력 여성 중엔 아이가 없는 비율이 크게 늘어납니다. 결과적으로 일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셈이죠.
동아일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한 여인이 ‘아이를 갖는 걸 잊었다니 믿을 수 없어요’라며 눈물 짖고 있다. 골딘 교수는 이 작품 속 이미지가 197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미국 여성들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1980년대 이후 미국 대졸 여성은 좀 늦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등장 덕분이죠. 이제 고학력 여성들은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특히 석박사 학위가 있는 여성 중 자녀가 있는 비율은 바로 이전 세대보다 크게 늘었죠.

그렇다면 역시 난자동결은 불임클리닉 광고대로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희망의 기술인 걸까요. 글쎄요. 그렇게 결론이 단순하진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세계가 워낙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출산 성공률은 얼마?

난자동결의 최종 목표는 성공적인 출산입니다. 그럼 얼렸던 난자를 해동해 시험관시술을 했을 때 출산까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잘 모릅니다. 통계마다 수치가 워낙 제각각이기 때문인데요. 일단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에 따르면 얼렸던 난자를 이용한 여성의 이용한 정상 출산율은 18%입니다. 일반적인 시험관시술 성공률(26%)보다 훨씬 낮은, 실망스런 수치인데요.

미국 뉴욕대 난임센터 연구 결과는 이보다는 희망적입니다. 냉동된 난자에서 정상 출산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39%로 나타났는데요. 만약 난자동결 시술을 받을 때 나이가 만 38세 미만이라면 성공률이 51%로 높아집니다. 특히 38세 미만이면서 난자를 20개 이상 해동했다면 출산 성공 비율이 70%라고 합니다. 동결 시점의 나이와 얼마나 많은 난자를 얼렸느냐(보통 시술 횟수와 비례)가 중요한 겁니다.
동아일보

얼렸던 난자를 이용해 임신하려면 체외수정 시술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성공 확률은 생각만큼 높지 않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난자동결은 임신 성공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든든한 ‘보험’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비싼 복권(꽝 나올 확률 높음)’이 될 수 있는 거죠. 미국 생식의학회 회장인 마르셀 시더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들이 난자동결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임신율은 많은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요. 저는 항상 환자들에게 ‘냉동실엔 아기가 없어요’라고 말해줘요.”

그럼 성공확률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더 일찍, 20대 초반에 난자를 얼려야 하냐고요? 그건 전문가들이 권하지 않습니다. 자연임신을 할 수 있는 기간과 기회가 많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죠. 비싼 복권을 사놓고 아예 평생 긁지도 않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동결한 난자는 매년 일정금액(미국은 500~1000달러, 한국은 20만~30만원)의 보관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시술을 일찍 하면 그만큼 비용도 더 듭니다.

부작용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호르몬주사의 드물지만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난소과자극증후군인데요. 몸이 붓고 복수가 차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죠. 나이가 어리면 이 부작용 발생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난자동결 지원을 둘러싼 논쟁

현실적으로 난자동결을 할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건 이런 의학적 이유보다는 비용입니다. 특히 미국의 비싼 병원은 시술 한 번에 1만5000달러, 5년 보관료까지 하면 2만 달러(약 2600만원)가 들어서 웬만해선 엄두가 안 나는데요. 바로 이 점 때문에 난자동결 비용 지원을 약속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2014년 애플과 페이스북(현 메타)이 난자동결 지원을 직원 혜택으로 내걸어서 크게 화제가 됐죠. 지금은 구글·넷플릭스·우버 등 IT기업뿐 아니라 블랙록 같은 대형 투자회사, 쿨리 같은 로펌에서도 난자동결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합니다. 머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대기업(임직원 수 2만명 이상) 중 19%가 난자동결을 직원 혜택 패키지에 포함시켰습니다. 2015년 6%에서 크게 늘었는데요. 경쟁력 있는 여성 인재를 확보·유지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지난해부터 난자동결 시술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고 있더군요.

그런데 직원들에게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이 혜택을 두고 미국과 유럽에선 많은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이 혜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거냐는 의심-‘이거 출산이 아니라 혹시 ‘출산 연기’를 장려하고 있는 거 아니야?’-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을 회사에 바치기 위해 출산을 미루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거란 우려였죠.
동아일보

난자동결 비용을 지원해주는 기업은 직원들에게 출산을 미루라는 은근한 압박을 주고 있는 걸까? 게티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대 경영대학원 리사 레슬리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 ‘진보인가요 아니면 압박인가요? 난자동결 지원과 다른 직장생활 정책의 신호효과’에서도 이런 부정적 인식이 드러납니다. 연구 결과 회사의 난자동결 지원 혜택이 다른 출산장려책(시험관시술 지원, 직장 내 어린이집, 유급 육아휴직제도, 유연근무제)보다 유독 직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더 많이 불러일으켰다는데요. 난자동결을 회사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는 게 ‘업무가 우선이고 개인생활을 좀 희생할 수 있다(일을 위해 출산을 미뤄라)’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결론입니다.

솔직히 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은데요. 또 다른 미국의 연구(2020년)에서는 회사로부터 난자동결 지원을 받은 직원들을 인터뷰해보니, 출산을 미뤄야 한다는 압력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는 반응 일색이었거든요.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 점은 지적해야겠습니다. 난자동결을 지원해 주는 건 일-가정 균형 문제 해결과는 별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뒤로 미뤄둘 뿐이죠.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자동결 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기 시작했는데요. 부담을 덜어주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과연 ‘얼려놓은 난자를 녹여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골딘 교수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볼게요. 보조생식술 덕분에 ‘커리어와 아이’를 모두 손에 넣은 미국 대졸 여성들. 그럼 그들은 일-가정 균형 면에서 성공한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최근 30년 동안 남성 대졸자와의 소득 격차가 거의 줄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과 아이를 모두 얻은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 이후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좀 더 유연한 일자리(칼퇴근 가능한 업무나 파트타임 같은)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게 핵심 결론입니다. 난자동결과 시험관시술로 아이를 늦게 갖는 건 가능해졌지만, 육아로 인해 여성이 커리어 일부를 포기하는 건 여전하단 겁니다.
동아일보

미국 대졸자의 성별 임금 격차(점선)는 1990년대 이후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고졸 이하 학력자까지 포함할 경우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실선)과 대조적이다. 골딘 교수는 이 문제를 파고 들었고, 그 이유가 육아를 위한 고학력 부부의 역할 분담이라고 결론 내렸다. 보통 남편은 급여가 높은 ‘온콜(on-call, 언제든 불려나갈 수 있음)’의 일자리를, 아내는 아이를 돌볼 시간 여유가 있는 유연한 일자리를 맡는다는 뜻이다. 그래프는 ‘커리어 그리고 가정’ 책에서 인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해법은? 골딘 교수는 일자리 구조의 변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 그리고 특히 남성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맹렬하게 달려드는 것을 줄이고, 다른 남성 동료들이 육아휴직 갈 때 지원해주고, 아동 돌봄을 보조하는 정책에 투표하고, 가정이 일보다 더 가치 있다는 점을 회사에 알려야 한다’는 겁니다. 동의하시나요? 이상적이지만 참 갈 길이 멀겠다 싶은데요. 합계 출산율 0.76명(상반기 기준)의 한국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 아닐까 합니다. By.딥다이브

제가 난자동결 시술을 처음 취재했던 게 2007년. 당시 차병원에 난자를 동결해둔 미혼여성은 딱 2명뿐이었습니다. 한명은 항암치료를 앞둔 암환자, 다른 한명은 한국의 난자동결 비용이 미국보다 훨씬 싸다는 걸 알고 찾아온 미국 교포였죠. ‘건강에 문제 없지만 언젠가 출산을 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 난자를 얼리는 미혼여성은 그때만 해도 뉴욕타임스 기사에나 나오는 사례였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연 1000명이 넘게 시술을 한다니,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생식력 보존을 위해 난자를 얼리는 시술을 하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만혼 추세에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었죠.

-불임클리닉의 마케팅도 영향을 끼칩니다. 잠시 임신 따위는 잊고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보험’ 정도로 받아들이는 추세이죠. 실제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은 미국 대졸 여성이 직업을 유지하며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곤란합니다. 영국에선 동결된 난자를 이용해 정상 출산을 하는 확률이 18%라는 통계가 있죠. 자칫 ‘보험’이 아니라 ‘비싼 복권’이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난자동결 비용을 지원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출산을 미루라는 압박’이란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정말 출산을 장려하려면 ‘어떻게 하면 얼린 난자를 녹이고 싶게 만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둬야 하겠습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