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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서규 팹리스산업협회장 “TSMC·미디어텍 성장 뒤엔 대만 정부 전폭적 지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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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대표)./한국팹리스산업협회 제공



“우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의 신경망처리장치(NPU) 분야 기술력은 글로벌 기업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NPU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시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더욱 두각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난달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픽셀플러스 본사에서 만난 이서규(65)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대표)은 이같이 말했다. AI 딥러닝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지만, AI 추론용으로 쓰이는 NPU 분야에서는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기술이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말처럼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NPU 분야에서 기술력을 앞세워 팹리스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AI 추론 영역에서 GPU와 비교할 때 응답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나 전력 소모 측면에서 효율적인 NPU의 장점을 파고들었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세미파이브 등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이 독자 설계한 제품이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반도체 칩에 적용되는 설계 블록을 사전에 개발하는 반도체 설계자산(IP) 분야에서도 퀄리타스반도체와 파네시아 등 토종 기업들이 글로벌로 무대를 확장 중이다.

하지만 우리 팹리스 산업이 갈 길은 아직 멀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글로벌 팹리스 1위 기업인 미국 퀄컴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8조원. 한국 1위 팹리스 업체인 LX세미콘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1000억원대로 격차가 크다. 이 회장은 “국내 팹리스 산업 규모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라며 “120개가 넘는 회원사 중에 매출이 5000억원이 넘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팹리스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육성책을 발표했지만,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스타 팹리스 후보기업’ 20개사를 선정하고 총 15건의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연구개발(R&D) 과제를 제시하며 지원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배정된 예산이 139억6600만원에 불과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제대로 된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정부 지원으로는 20개 기업이 3년간 20억원만 지원받게 된다”며 “정부 과제도 연구개발 중심이라 팹리스 기업에게 필요한 사업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설계 분야 기업체들이 조직한 단체로, 지난해 8월 출범했다. 이서규 회장은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LG반도체 CCD 연구개발실 실장을 역임한 뒤, 2000년 픽셀플러스를 설립했다. 픽셀플러스는 상보성금속산화막 반도체(CMOS) 이미지센서와 이미지처리 집적회로(IC)를 개발하고 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리벨리온, 딥엑스 등 AI 반도체 기업과 퀄리타스반도체, 파네시아 등 IP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

“전문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고, 팹리스 산업에 대한 이해도 탁월했다. 창업자들이 박사학위를 보유한 전문가들이거나, 글로벌 기업 출신들이다.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 AI 반도체 시장을 읽는 능력도 뛰어났다. AI 반도체는 크게 학습용과 추론용으로 나눠진다. 학습용은 GPU를 쓰고 추론용에 NPU가 쓰인다. 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점하고 있지만, NPU 분야는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뒤지지 않는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이 NPU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NPU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돼 우리 기업들이 더욱 선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반도체 설계 지형이 RISC-V 등 오픈소스의 등장으로 다변화하고 있는데, 국내 팹리스 산업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오픈소스가 등장하면서 라이선스 비용 부담이 줄었다. 오픈소스 기반 반도체 설계자산(IP) 아키텍처 ‘리스크 파이브(RISC-V)’가 등장해 라이선스나 로열티 없이 IP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ARM 같은 곳과 라이센싱 계약을 맺어 로열티 부담도 크지만, 수정할 때마다 통보도 해야 하고 계약 갱신도 신경써야 하는 등 행정적인 절차도 까다로웠다. 물론 RISC-V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다소 불안정하고,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RISC-V 오픈소스 IP를 검증하고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수정하는 전문업체들이 등장하면서 단점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형 팹리스 기업들이 개발 단계에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강소기업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 점유율 측면에선 갈 길이 멀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매출을 전부 합쳐도 3조5000억원 안팎이다. 그 중에 LX세미콘이 2조1000억원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팹리스 강국인 대만의 산업 매출 규모가 대략 60조원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30년 1500조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스템 반도체의 뿌리가 되는 팹리스 산업을 키워야하는데, 현재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대만은 1980년대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다. 그 결과 TSMC 같은 초대형 파운드리 전문업체 뿐만 아니라, 미디어텍을 비롯해 세계 10위 안에 드는 팹리스 회사들이 대거 탄생했다. 우리나라도 속히 팹리스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국내 팹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파운드리 기업을 비롯해 팹리스와 후공정 전문업체(OSAT),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등이 가까운 거리에서 협업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지근거리에 있어야 상호 피드백이 빨라지고 성능이 개선된 제품이 나온다. 이런 과정에서 수율이 높아지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IP와 디자인하우스, 팹리스, 파운드리 등이 연결돼 돌아가야 완벽한 칩을 만들 수 있다. 제3 판교테크노밸리에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꾸린다면 집적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인재 육성도 절실하다.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성장해 설계 분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대학과 연구기관에 적극 투자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해야 한다. 오픈엣지테크놀로지나 퓨리오사AI 같은 AI 반도체 기업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경쟁사를 뛰어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IP 분야가 활성화되면 팹리스 기업들도 설계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

—정부에서도 팹리스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스타 팹리스 후보기업’을 선정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에서도 팹리스 산업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20개 기업이 선정돼 3년간 각각 20억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취지대로 글로벌 기업을 키워내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제대로 된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과제를 내고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돼야 한다. 이 과정이 8개월 가까이 걸려 시간이 지체된다. 팹리스 기업들은 당장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제품을 설계해 공급해야 하는데, 정부 과제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연구개발(R&D) 성격이 짙다는 문제도 있다.”

—팹리스 산업을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성장을 위한 당면 과제는.

“5~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려면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살아나야 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현재 퀄컴, 인텔 등 미국 팹리스 기업들과 주로 협업하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국의 파운드리 기업과 함께할 것이다. 결국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성장해야 국내 수요도 살아나고 건강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된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성장해 설계 능력이 뒷받침돼야 파운드리 사업도 활성화될 수 있다.”

전병수 기자(outstandi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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