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의 지원금 삭감 여파로 ‘지원 피로감’ 부각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의 공동 외교장관 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맨 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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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이 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의회가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우크라이나 지원금을 제외하고 유럽연합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반대 정당이 승리하면서 제기되는 서방의 ‘지원 피로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유럽연합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이날 키이우에서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번 외교장관 회의는 유럽연합 외부에서 열린 첫 회의였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우크라이나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회의를 역사적인 첫 회의로 평가했다.
보렐 대표는 회의 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단결을 유지하고 있다”며 “참여를 포기하는 회원국은 한곳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내년에 최대 50억유로(약 7조1200억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며 연내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겨울철을 앞둔 러시아의 송전망 등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방공망을 강화하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등 겨울철 대책을 특히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외교장관 회의에 맞춰 발표한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와 전체 자유세계가 (러시아와의) 이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우리의 승리는 당신들과의 협력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외교장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단합된 모습을 연출하려 했지만, 지난 1년8개월간 유지돼온 ‘서구의 연대’에 균열이 나타난 징후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가장 이목을 끈 움직임은 미국 의회에서 발생했다. 미 의회는 지난달 30일, 10월1일부터 시작될 위기였던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를 피하기 위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제외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애초 요청액은 240억달러(약 32조6000억원, 미국의 전체 지원액 467억달러)였다. 이에 따라 잔액이 겨우 16억달러 남은 미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기존의 안보 지원 프로그램 재원이 거의 바닥났다며 의회가 지원을 계속할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커린 잔피에어 미 백악관 대변인은 2일 곧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 지원을 실시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지원 중단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 애썼다. 그는 “우크라이나 뒤에는 아주 강한 국제 연대가 존재한다”며 “만약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리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쿨레바 장관 역시 “미 의회의 양쪽, 곧 공화당·민주당과 심도 깊은 논의를 벌였다”며 미국의 지원이 지속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연합 외교장관들에게는 “그들의 방위산업체들이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체들과 협력하도록 최대한 지원해줄 것”을 촉구했다.
균열의 징후는 유럽연합 내부에서도 관찰된다. 지난달 30일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을 공언한 좌파 정당 ‘스메르(방향)―사회민주주의’가 23%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스메르를 이끄는 로베르트 피초 전 슬로바키아 총리는 자신들이 정부를 구성하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보내지 않을 것임을 공언해왔다. 그는 총선 승리 이후 “우크라이나를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지원할 준비가 됐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며 “국가 재건을 도울 준비는 됐지만, 우크라이나 무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익히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제외 결정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이번 사태가 서방의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미국이 분쟁에 계속 개입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거듭 지적했듯이,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키이우 정권에 대한 완전히 어리석은 후원에 대한 피로감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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