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자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장기 계약(LTA)을 삼성전자에 강요한 '갑질' 정황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
심지어 브로드컴 직원조차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삼성전자를 협박한다고 인식한 정황이 나타났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차질이 우려된다', '가진 카드가 없다'며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21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2019년 삼성전자가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에 따라 갤럭시 S20에 브로드컴 경쟁사인 코보의 OMH PAMiD(통신 신호 품질을 향상하는 RFFE 부품들을 결합한 모듈)를 탑재하자 삼성전자에 여러 차례 불만과 실망을 표현했다.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 대표이사에게 "증오스러운 경쟁자"의 부품을 채택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협상 당시 삼성전자와 브로드컴 직원들이 남긴 이메일, 업무 메모를 보면 양사 간 힘의 불균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성 측 협상 담당자들은 '이따위를 초안이랍시고 던지는 행태에 화가 치밀지만, 카드가 없다',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브로드컴이 급한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반면 브로드컴 담당자는 삼성전자에 취한 구매 승인 중단 등 조치를 스스로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하고 '기업윤리에 반하는', '협박'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업무 메모를 이메일 형식으로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법률대리인은 지난 13일 제재 여부와 수위를 논의하는 전원회의에 참석해 "브로드컴의 행동은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공급망 교란 행위"라며 "부품을 볼모로 국내 기업의 영업과 시장 경쟁을 위협할 수 없도록 명확히 조치해달라"고 말했다.
송인강 삼성전자 상무도 "브로드컴은 S20 단말기 생산 중단 시 발생할 막대한 매출 손실과 브랜드 가치 저하를 볼모로 불합리한 조건을 관철했다"며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에 브로드컴 미국 본사와 한국·싱가포르 지사 등 4개 사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행위(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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