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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이슈 교권 추락

“교사로서 자긍심 잃어”… 대전 교사 생전 교권 침해 기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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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40대 교사가 생전 특정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교권 침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인은 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을 느끼며 우울증약까지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대전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고인이 된 교사 A씨는 지난 7월 고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초등교사노조가 실시한 교권침해사례 설문조사에 자신의 사례를 제보했다. A씨는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몇몇 학생이 교사에 지시에 불응하고 같은 반 학생을 괴롭히는 등 수업 태도가 불량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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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의 유족들이 지난 9일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영정사진을 들고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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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직접 작성해 제출한 글에는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들을 불편하게 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A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한 B학생의 경우에는 학기 초인 3월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의 목을 팔로 졸라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했다. B학생은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치기도 했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 A씨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버텼으며 다른 친구를 발로 차거나 꼬집기도 했다.

4월에는 B학생 학부모와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학부모는 “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개구쟁이라고 하는 게 기분이 나빴고 교사를 무서워해서 학교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다”며 “(고인이) 1학년을 맡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 번은 A씨가 급식을 먹지 않겠다며 누워서 버티는 B학생을 일으켜 세웠는데 10일 뒤 학생의 어머니는 “억지로 아이의 몸에 손을 대고 전교생 앞에서 본인의 아이를 지도해 불쾌하다”며 해당 일을 아동학대 사건 중 하나로 고소하기도 했다.

2학기에도 B학생의 행동은 계속됐다. B학생은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얼굴 쪽에 발을 올리는 등 친구들을 괴롭히는 행동을 했다. 학생 지도가 어려워진 A씨는 교장 선생님에게 지도를 부탁해 B학생을 교장실로 보냈는데 다음날 학부모는 학교로 찾아와 A씨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학부모에게 B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 했을 뿐 마음의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12월2일 국민신문고와 경찰서에 고인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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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A씨가 작성했 교권상담 신청서 내용. 대전교사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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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교육청 장학사의 조사 결과 아동학대 혐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학교폭력위원회에선 1호 처분(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이 내려졌다. 이에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씨는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A씨는 계속해서 아동학대 관련 조사를 받아야 했다. 2020년 2월 아동학대 조사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조사 결과 A씨의 행동을 ‘정서학대’로 판단해 경찰서에 사건을 넘겼다. 4월 경찰 조사, 6월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A씨는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교사로서의 무기력감을 느끼고 교사에 대한 자긍심 등을 잃었다고 전했다. 아동학대 조사 기관은 교육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며 아동학대 결정을 내린 판단 기준을 묻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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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의 발인이 거행된 지난 9일 숨진 교사가 근무했던 학교에 마련된 분향소에 추모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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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혼자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글을 쓴 지 약 한 달 반 뒤인 지난 7일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대전교사노동조합은 “학생과 학교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세상에 빛이 되어준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며 “대전시교육청은 앞장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순직처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더 이상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빨리 교권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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