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보험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에 관한 계약이고, 계약서라고 할 수 있는 약관은 어렵고 복잡하다. 소비자가 모두 읽어보고 하나하나 따져보기 쉽지 않다. 잘 몰라도 파는 쪽을 믿고 살 수밖에 없는 상품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보험상품을 신뢰재라고도 한다. 그러나 국민 중 우리나라 보험사를 신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민원 8만7000여 건중 보험이 59.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10건의 금융서비스 불만 중 6건이 보험 상품 관련인 셈이다.
최근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해 시행 8부 능선을 넘은 실손의료보험 전산화(이하 실손전산화) 사례만 봐도 보험사가 얼마나 대국민 신뢰를 잃었는지 알 수 있다.
실손전산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 변경 권고 이후 14년만인 올해 들어서야 국회 통과를 눈 앞에 두고 있을 만큼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반대가 너무 커서였다. 의료계의 실손전산화 반대 의견 중에는 '보험사가 소비자를 위한 일(실손전산화)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다른 상황에서 나온 얘기라면 사실상 억지에 가까웠을 내용이다. 하지만 실손전산화 이슈에서는 소위 '먹히는' 논리였다. 실제로 의료계는 실손전산화가 주제인 토론회와 세미나 등에서 해당 의견을 거의 빼먹지 않고 주장했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해당 주장에 반박하고 반발하는 곳은 보험업계 뿐이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불완전판매와 약관 불신, 보험사기 사례 등이 보험업계 신뢰를 그동안 야금야금 갉아 먹어 왔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나와 내 주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불완전판매에 의한 보험부지급 사례는 신뢰를 무너트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보험사들은 일부의 조직 말단 영업 채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판매액을 올리기 위해 영업 채널로 내려보낸 경쟁적이고 도발적인 정책들은 보험사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순간의 매출과 승리감을 얻고 보험산업의 근간이 되는 신뢰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일하는 보험업계 관계자로부터 일본 사회에서 보험사의 위상은 우리와 정반대라는 말을 들었다. 매출 중심이 아닌 소비자와의 동반 성장을 통한 손해율 개선을 경영 원칙으로 삼고 있는게 우리와 가장 다른점이라고 했다.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 보험업계는 헬스케어와 요양·상조, 펫시장 등 부수 산업에서 본업에 맞먹는 성과를 내며 보험산업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우리 보험산업 역시 쉽지 않다. 일본을 벤치마킹 해 헬스케어나 요양·상조 업계로의 진출을 시도 중이다. 관련 규제도 서서히 풀릴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낮은 소비자 신뢰를 가지고는 부수 산업의 안착을 장담하기 어렵다.
보험산업 신뢰 제고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판매채널 정상화를 고민하고 영업 일변도의 경쟁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시도도 응원받기 힘들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김세관 기자 sone@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