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이후 정부 대응에 찬성·반대 시민들
각자 성향에 맞지 않는 유튜버·연예인 공격 반복
진영 대결 몰아가는 정부 태도, 편 가르기 부추겨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 ‘쯔양’(본명 박정원)이 지난 2일 업로드한 가락시장 킹크랩 먹방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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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굳이 수산물 먹방을….” “깨어있는 척. 반일 선동하지 마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이후 정부 대응에 찬성·반대하는 측이 각자 성향에 맞지 않는 유튜버나 연예인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협치는 없다”는 식의 정부 태도가 이 같은 싸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의 양극화가 시민들의 양극화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구독자 868만명의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은 지난달 25일 새우장과 연어장 먹방 영상에 이어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킹크랩을 먹는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새우장·연어장 먹방에는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가 후원사로 참여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지난달 24일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언급하며 “이런 시점에 일본기업 후원을 받는 게 맞느냐” “오염수에 절인 수산물 먹방을 하지 말아라”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를 온라인 매체 등이 보도하면서 유튜브 댓글창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서로를 비난하는 싸움터가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김윤아’와 ‘후쿠시마’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관련 기사들이 검색됐다. 김윤아씨를 향해 쏟아진 비난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는 내용이 다수다. 네이버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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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우려를 표한 연예인을 향해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밴드 자우림 보컬 김윤아씨는 오염수 방류 당일인 지난달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RIP 地球(지구)’라고 적힌 이미지를 올리면서 “며칠 전부터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중략)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김씨는 “중학교 과학, 물의 순환. 해양 오염의 문제는 생선과 김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오염수 방류 문제를 어민들 생계 문제에 국한하려는 정부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 보도가 나오자 친여 성향 누리꾼은 물론 전여옥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최순실씨(개명 후 최서원)의 딸 정유라씨 등이 일제히 김씨를 비난했다. 전 의원은 7년 전 한 방송에서 김씨가 오사카 한 식당을 찾아 식사하는 장면을 캡처해 올리고는 “2016년과 2019년 김윤아는 ‘일본먹방러’로 끝내줬다”고 조롱했다. 배우 장혁진씨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당일 “오늘을 기억해야 한다. 오염수 방출의 날. 이런 만행이라니 너무나 일본스럽다. 맘 놓고 해산물 먹을 날이 사라짐. 다음 세대에게 죄지었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쓴 뒤 ‘악성 댓글 세례’를 받았다.
유튜브 ‘신의한수’ 채널이 지난달 25일 업로드한 영상 일부 갈무리. 해당 영상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를 표한 연예인들의 ‘일본 영구 입국금지’를 일본 외무성에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구독자 147만명)는 지난달 25일 ”최근 며칠 사이 대한민국에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와 관련해 극심한 반일 선동을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며 “자우림의 김윤아, 배우 장혁진 이 두 인물에 대해 일본 외무성 차원에서 일본에 대한 영구 입국금지 조치를 위해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의 e메일을 일본 외무성에 보냈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건물에 진입하다 체포된 대학생들에겐 ‘친북 프레임’이 씌워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 대학생 원정단’ 등 단체들은 지난달 31일 조선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대학생들의 일본대사관 건물 진입 시위를 북한 지령에 의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북, 오염수 방류 직전 국내 지하조직에 “일 대사관 진입” 지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4일 대학생들의 일본 대사관 진입 시도가 북한 지령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일각에선 설득·토론·타협 대신 진영 대결로 오염수 문제를 몰아가는 정부 태도가 편 가르기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자리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도대체가 ‘과학이라는 건 1+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며 “협치협치 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야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면 그건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양극화가 시민의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5일 통화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내놓아야 할 정치인과 정부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이벤트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정치가 진영화되다 보니 민주적인 공론장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방을 무조건 비난하고 악마화하는 혐오문화가 형성됐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내 편인지 아닌지만 가르는 척도로 이슈가 소비되고 있다. 정치적인 이념화와 양극화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가 소통 기회를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구 교수는 “정부가 ‘나는 옳은 말을 하는데 왜 삐딱하게 받아들이냐’라고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공청회·토론회 등 대화의 접점을 늘리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치권은 나는 무조건 옳고 상대방은 완전히 틀렸다는 극단적 표현을 지양하고, 언론도 단순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는 자제해야 한다”면서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이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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