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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녹색세상]가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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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노동>, 올해 만난 책 중 뼈때리게 공감한 책이다. 아니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부끄럽고 반성하게 해주었다. 기업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조직에서 일하지만 개인은 물론 팀들도 성과와 역량에 차이가 보인다. 잘하는 사람은 말이나 기획안이 정돈되어 있고, 목표나 최종 결과가 간명하다. 반면에 빈칸 채우듯이 가져온 기획서는 자료조사도 부족하고 스스로 관심도 없고, 잘해보려는 헝그리 정신도 없는 게 드러나곤 한다. 그리고 재밌는 건 성과가 저조한 팀일수록 회의 시간이 무한정 길다는 사실이다. 그런 쓸데없는 일을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가짜노동이다.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 두 덴마크인은 인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컨설팅·강연·작가 등 다양한 일을 섭렵하면서 우리가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진짜 해야 될 일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이유는 뭘까? 이런 호기심에서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정리해 출간했다. 정의하자면, 성과와 상관없는 일, 보여주기식의 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위한 일, 단지 바빠 보이기 위한 무의미한 일들은 모두 가짜노동이다. 이 ‘가짜노동’의 메시지에 전율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기후변화, 저출생·고령화, 인플레이션, 경제위기, 국가 간 갈등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넘쳐나고 있어, ‘보여주기 방식’의 가짜노동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부산에서는 25일부터 12월1일까지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차 회의에서는 석유화학 업체의 로비스트가 180명 EU 참가단 숫자보다 많았지만,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우리 내장과 뇌수까지 파고들고 있기에 협약의 속도가 늦춰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협상위원회 개최국가인데도 우리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 않는 게 이상할 뿐이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보다 재활용을 우선하자는 입장이 득세하고 있는데, 플라스틱을 포함해 우리나라 재활용시장이야말로 가짜노동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 폐기물의 85% 이상이 재활용되었다고 한다. 생활폐기물의 60%, 사업장폐기물의 84%, 건설폐기물의 99.7%가 재활용되었다는데 이는 실상과 거리가 멀다. 이 수치는 재활용시설에 반입된 양만으로 계산한 것이기에, 폐기물이 실제로 재활용 제품으로 만들어져 순환이용되었는지와 관계없이 재활용시설에 들어가기만 하면 ‘재활용’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폐기물 배출자들은 폐기물 처분 부담금도 피하고, 시설 반입만으로 재활용 실적이 인정되니 아니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TV를 켜면 우리는 가짜노동의 현장을 매일 목도하고 있다. 길가 상점이 주르륵 비어 있는 지가 언젠데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한다거나, 매일매일 트집 잡고 싸우느라 본래 해야 할 개혁은 뒷전인 정당들이나, 국민의 열망을 알아채지 못하고 애먼 소리 하는 지도자나 모두 현실판 가짜노동자들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시늉으로만 하면 주가가 진실을 알려준다. 남 말할 것 없다. 이 글이야말로 진짜 칼럼인지, 간담이 서늘하다.

경향신문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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