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경력 문제 삼아
‘홍범도함’도 “필요시 개명 검토할 수 있다”
반대 커지자 5인 중 홍 장군 흉상만 이전 검토
남로당 조직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한 분” 평가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을 촬영했다. 김창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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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고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5인의 흉상 철거·이전을 둘러싸고 윤석열 정부가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방부는 흉상 철거 이유로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들었지만,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조직책 출신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한 분”이라고 추어올렸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홍 장군보다 남로당 조직책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물이 더 많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면서 “홍범도 장군의 역사적인 가치는 다른 차원이라서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앞서 26일 국방부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흉상 철거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공산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평가하며 자기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홍 장군은 59세이던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광복 2년 전인 1943년 사망해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이나 6·25전쟁과 관련이 없다. 박정희 정부도 홍 장군의 공적을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논란이 계속 확산되자 국방부는 이날 오후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소련 측 정부문서를 인용해 “홍 장군이 1930년대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갔다’로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또 1921년 6월 발생한 자유시 참변사태 이후 홍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한 점도 문제삼았다. 그러나 홍 장군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직접 가담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특히 흉상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자 독립영웅 5인 중 공산당 입당 기록이 뚜렷한 홍 장군의 흉상만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홍 장군만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자료에서도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은 육사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성이 있다면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방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으나,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또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 명칭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대변인은 “필요성이 있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육사 흉상 철거 여파가 잠수함명으로 번질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홍범도함은 해군의 7번째 1800t 손원일급 잠수함으로 2018년 실전 배치됐다. 국난 극복에 기여했거나 항일 독립운동을 한 위인들의 이름을 붙여온 손원일급 잠수함명에는 이번에 논란이 된 홍범도·김좌진·이범석 등 3명이 포함돼 있다.
다만 브리핑에 배석한 장도영 해군 서울공보팀장은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국방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타국으로 양도되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군함 이름이 바뀐 전례는 찾기 힘들다.
최근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가와 전쟁영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하면서 친일행적이나 독립운동 공로보다는 반공 여부에 초점을 맞춰왔다. 보훈부가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표현을 삭제한 것도 이같은 연장선이다.
국방부는 독립영웅 5인 흉상을 치운 자리에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전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면서 “육사에서 검토할 사항”이라고 했다. 국방부 청사 앞에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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