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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日석학 무라오카 “한·일 화해 위해 천황이 명확한 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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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피해자 만나 사죄한 日석학 무라오카 다카미쓰 레이던대 교수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의 힘을 믿습니다. 하루빨리 화해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일본 천황(일왕)의 명확한 사과가 필요합니다.”

무라오카 다카미쓰(村岡崇光·85) 네덜란드 레이던대 명예교수는 고대 히브리어·그리스어 등 고전 문헌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 외에도 시리아어·에티오피아어·아람어 등 10여 개 언어를 구사한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일본의 이 노(老)학자는 한국에 ‘위안부에게 고개 숙인 일본인’으로 더 유명하다. 2015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피해자 이용수·길원옥 할머니를 만나 “일본이 저지른 죄를 용서해달라”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인근 자택에서 만난 그는 “일본이 솔직하게, 진심을 다한 사과를 통해 화해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솔직하게, 진심을 다한 사과’를 ‘일본 천황(일왕)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의 사과’라고 규정했다.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마음이 아프다’ 같은 표현으론 부족합니다. 구체적으로 ‘선대 천황의 병사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명확한 사과의 뜻을 담은 표현을 써야 합니다.”

일부 일본 정치인은 과거사 교육이나 천황의 사과가 일본 국민의 자긍심에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라오카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에 대한) 자긍심(pride)은 자존감(self-respect)에서 오고, 자존감은 도덕적 의무에 대한 자각에서 온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 자존감부터 부족하다”고 했다. 일본이 스스로 과거사 청산이라는 도덕적 의무를 회피했기에 일본 국민이 자존감을 갖지 못했고, 결국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낮은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란 얘기다.

그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천황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등을 통해 세계적 리더 국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명확한 사과 없인 (한국과 중국 등의) 동의를 결코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 일본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자 오히려 “자국의 과거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식이다.

네덜란드에선 지난달 1일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150여 년 만에 과거 노예무역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 후손에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무라오카 교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히로히토 이후) 3대째인 지금의 천황이라도 늦지 않다. 그가 침묵하는 한 과거의 병사들 역시 침묵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일왕의 사과가 있어야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 등의 진정한 사과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무라오카 교수는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도쿄교육대를 졸업하고 1964년 이스라엘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 맨체스터대, 호주 멜버른대를 거쳐 1991년 네덜란드 레이던대에 자리를 잡았고 2003년 은퇴했다. 이후 거의 매년 일본 군국주의 전쟁 피해국을 찾아 생존 피해자를 만나고 현지 대학서 무료 강좌를 열어왔다. 그는 이 경험을 2014년 ‘나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십자가의 길)’란 책으로 펴냈다.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엔 한국어판도 나왔다.

그는 매년 7월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열리는 이준 열사 순국 추모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그는 “해외에서 일본에 대한 냉정한 기록과 평가를 접하고서 충격을 받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며 “일본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헤이그(네덜란드)=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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