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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명령 불복종’ 공로로 사찰에서 제사상 받는 군인과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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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화엄사는 차일혁 경무관, 해인사는 김영환 장군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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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를 지킨 차일혁 경무관(왼쪽)과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김영환 장군. /화엄사-해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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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불복종’한 공로(?)로 매년 기일(忌日)이면 사찰에서 스님들이 차려주는 제사상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차일혁(1920~1958) 경무관과 김영환(1921~1954) 장군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각각 화엄사와 해인사를 지킨 분들입니다. 여기서 ‘지켰다’는 표현은 일반적인 개념과는 좀 다릅니다. 보통은 군인과 경찰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방어할 때 ‘지킨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분들은 사찰을 소각·폭격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공로로 사찰로부터 제사상을 받고 있습니다. 6·25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기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화엄사, 10일 차일혁 경무관 다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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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전경. 세계 요가의 날(6월21일)을 앞두고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서 500여 명의 요가인들이 모여 함께 요가를 즐기고 있다.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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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는 오는 10일(음력 6월 24일) 각황전에서 차일혁 경무관 65주기 다례재를 봉행한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화엄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란의 화마 속에서 우리 겨레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지리산 대화엄사를 지켰다”고 썼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차 경무관은 6·25 전쟁 당시 ‘지리산 호랑이’로 불린 빨치산 토벌대장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남한 지역에 고립된 인민군 잔당 빨치산들은 지리산 등 험준한 산 속으로 숨어 게릴라전을 이어가지요. 이런 상황에서 차 경무관은 토벌대장으로 활동했지요. 1953년 9월 지리산에 은신해 저항하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것도 차 경무관이었습니다.

6.25 당시 빨치산 소탕 위한 ‘화엄사 소각’ 명령 어기고 문짝만 태워

그런 차 경무관에게도 1951년 5월 ‘따를 수 없는 명령’이 하달된 적이 있답니다. 바로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이었답니다. 빨치산들의 은신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였지요. 명령을 따르자니 천년 고찰이 잿더미가 될 상황이었지요. 이 순간, 차 경무관은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는 “사찰의 문짝을 떼어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떼어낸 문짝들을 불태웠지요. ‘완전 소각’이 아닌 ‘부분 소각’을 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화엄사를 완전소각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봉조치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차일혁은 당시 “절을 태우는 데는 한 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말을 남겼다지요. 그는 6·25전쟁 중 화엄사뿐 아니라 백양사·천은사·선운사·금산사·쌍계사 등 전남북과 경상남도의 사찰들까지 지켰다고 합니다.

차 경무관은 이후 충주경찰서장, 진해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등을 지냈고 1958년 8월 공주 금강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2011년엔 경무관으로 추서됐지요.

당시 종정 효봉 스님도 감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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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차일혁 경무관이 사찰을 지킨 공로에 대해 종정 효봉 스님이 수여한 감사장. /화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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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불교계는 차 경무관이 사찰을 불태우지 않고 지켜준 것을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별세하기 석 달 전인 1958년 5월 5일엔 당시 조계종 종정 효봉 스님이 차 총경에게 감사장을 드렸지요. 감사장에는 “사찰들이 전화(戰禍)로 소실될 재난을 면(免)케 한 공헌이 다대(多大)함으로 기념품을 증정하고 감사를 표하니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후로도 불교계는 1998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주도로 화엄사 경내에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차 경무관은 2012년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의해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됐고, 2013년에는 ‘호국의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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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화엄사 경내에서 열린 차일혁 경무관 추모행사에서 주지 덕문 스님이 인사말 하고 있다. /화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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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작년부터 차 경무관을 본격적으로 선양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화엄사 경내 공덕비 앞에서 첫 추모행사를 가지면서 올해부터는 국보인 각황전에서 다례재를 올리기로 했지요. 올해 다례재를 준비하면서 덕문 스님은 “차일혁 경무관과 같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한 선각자가 있어서 많은 문화재의 소실을 막을 수 있었다”며 “민족문화유산보존에 대한 후손들의 존경과 감사의 징표로서 만대에 걸쳐 선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인사, 2009년부터 김영환 장군 추모재

이에 앞서 지난 7월 3일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는 경내 대적광전에서 ‘고(故)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를 봉행했습니다. 김 장군은 ‘팔만대장경을 지킨 군인’으로 유명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로 강릉전진부대사령관이었던 김 장군은 한국공군의 단독출격작전을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운 분입니다. 김 장군(당시엔 대령) 역시 1951년 8월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해인사에는 빨치산들이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900명이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군으로서는 폭격할 명분과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김 장군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해인사 외곽에 기총사격만 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을 지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을 삼보(三寶) 즉 세 가지 보물로 부릅니다. 여기서 법은 부처님 가르침, 경전을 가리키지요.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가 법보종찰(法寶宗刹)로 불리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김 장군의 조치가 아니었더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은 70년 전에 잿더미로 변했을 것입니다. 몽골의 침입을 신앙으로 이겨내려 조성한 인류의 유산이 또다른 전쟁으로 인해 사라질 뻔한 것이지요.

‘해인사 폭격’ 명령 따르지 않고 팔만대장경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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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 6.25 당시 김영환 장군은 해인사 폭격 명령을 듣지 않고 팔만대장경을 지켰다. /조선일보DB


김 장군은 1953년 2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 1953년 12월 사천기지 제1훈련비행단장 등을 역임하며 항공 지원작전을 지휘하고 전투조종사 양성에 앞장 섰습니다. 1954년 동해안 묵호 상공에서 사고로 순직했습니다.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문화유산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지요. 해인사 삼선암에는 김 장군의 공로를 기리는 공적비가 2002년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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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일 해인사에서 김영환 장군 추모재가 열려 주지 혜일 스님이 차를 올리고 있다. /해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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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주지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 감사”

해인사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음력 5월 16일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년만에 열린 올해 추모제에는 해인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方丈) 원각 스님과 주지 혜일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과 김 장군 유가족 그리고 유재문 공군교육사령관, 김윤철 합천군수 등이 참석했습니다. 주지 혜일 스님은 봉행사를 통해 “해인사 사부대중은 고(故) 김영환 장군님의 팔만대장경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념으로 우리 공군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결정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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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일 해인사에서 열린 김영환 장군 추모재에는 유가족과 공군 관계자도 참석했다. /해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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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참모총장 “김 장군, 모든 책임질 각오로 팔만대장경 수호”

정상화 공군참모총장은 유재문 공군교육사령관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김 장군은) 지휘관으로서, 작전 실패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수호를 선택하신 것”이라며 “장군님의 뛰어난 혜안과 결단으로 우리 민족의 호국 의지가 담긴 위대한 문화유산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지켜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장군의 아들 김정기씨는 “전쟁 중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팔만대장경이 지닌 가치와 위대함을 인지하시고 끝까지 지켜내신 저의 아버님 ‘고 김영환 장군’을 가족 대표로서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존경한다”며 “성대한 추모재를 베풀어주신 해인총림 스님들께 감사 인사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사찰을 지킨 일화는 오대산 상원사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소각 명령을 받은 군인에게 한암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갖춰입고 “이제 준비됐다. 불을 지르라”고 했다지요. 그러자 장교는 역시 상원사 문짝을 태우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원사를 지킨 군인은 누구인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차일혁 경무관과 김영환 장군의 사례를 보면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선양하는 불교계의 보은 정신도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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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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