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공시법인은 상장사가 주요 경영사항을 제때 공시하지 않는 등 공시 규정을 어길 때 한국거래소가 지정한다. 불성실공시법인이 되면 제재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벌점이 1년 동안 15점 쌓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1년 동안 다시 벌점이 15점 쌓이거나 고의 또는 중과실로 다시 공시의무를 위반하면 상장폐지 실질 심사의 대상이 된다.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0% 넘게 줄거나 50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곳도 있다.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임직원들과 기업설명회(IR)나 탐방으로 내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와 달리 개인투자자는 공시가 가장 중요한 투자정보를 얻는 창구다. 이 때문에 불성실공시법인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메디톡스 사옥(왼쪽)과 대웅제약 사옥.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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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로 보면 올해 첫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곳은 일진그룹(일진홀딩스) 계열사로 수소연료저장 솔루션 기업인 일진하이솔루스다. 지난 2월 13일 일진하이솔루스는 매출액 또는 손익구조가 급변했음에도 이를 늦게 공시해 4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받고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한국거래소는 실적 발표 전이라도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이 30% 이상(대규모 법인은 15%) 변하면 미리 공시하도록 하는데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6.8% 감소했다.
3월에는 국내 대표 제약사인 대웅제약과 모기업 대웅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대웅제약과 대웅은 미간 주름 치료 등에 쓰이는 보튤리눔 톡신 균주를 도용했다며 메티톡스에 민사소송을 당했다. 2017년 메디톡스는 손해배상 청구액을 11억원으로 정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난해 9월 청구액을 501억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고 400억원의 손배 명령을 담고 있는 1심 판결이 나온 지난 2월에야 이를 공시했다. 서울지법의 1심 판결이 공개된 2월 10일 대웅제약은 전 거래일보다 19.35%(2만9800원) 하락한 12만42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만 3조4500억원 넘게 사라졌다.
지난 5월에는 이차전지 관련 기업 금양이 자사주 소각 계획을 사전에 일부 투자자에게만 먼저 알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고 8500만원의 제재금과 8.5점의 벌점을 받았다.
지난달에도 대기업들의 공시 지연은 계속됐다. 한화오션이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늦게 알렸고 녹십자도 판매‧공급계약 체결 사실을 늑장 공시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 예고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57억7300만원 규모의 인플루엔자 백신 공급계약을 조달청과 체결했는데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는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5.64%에 달하는 규모다. 거래소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상장공시위원회에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회사가 공시를 늦게 제출한 이유를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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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모 오르비스투자자문 대표는 “기관투자자와 달리 개인투자자는 기업탐방이나 IR 참여가 극히 제한적이고 회사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전자공시뿐”이라며 “이런 투자 환경에서 최근처럼 불성실공시 법인이 늘어나는 것은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간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거래소가 불성실공시 법인에 벌점을 부과해도 기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심지어 불공정공시가 있음에도 거래소가 그것을 적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라며 “관련 인력을 확충해 불공정공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통 규모가 작은 코스닥 시장 상장기업들이 실수 등으로 공시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사례를 강하게 처벌하면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가 많았다. 공시를 위반해도 처벌이 비교적 약한 것은 이 때문”이라며 “시장 투자자들 중심으로 공시 위반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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