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교수는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본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단하며 “일본의 상황을 나이로 치자면 계속 60대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는 관리에 따라 건강 상태가 달라질 수 있는시기”라면서 ”최근 일본 경제가 활기를 띠는 것은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2005년부터 와세다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있는 일본 전문가이다. 박 교수는 “워런 버핏, 블랙스톤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기업들에 투자를 했다고 해서 관심이 커졌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먼저 변화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여기에 공급망 등 지정학적 갈등에 다른 수혜가 더해지면서 일본 경제가 반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어 “일본 기업들의 상황이 좋아지면서 고용 상태도 나아지고 있다”면서 “거의 완전고용 상태”라며 달라진 일본 경제 상황을 전했다. 실제 토요타, 소니 등 일본 주요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있다. 지난해 토요타는 2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2022년 회계연도 기준 매출은 37조1542억엔으로 전년도에 비해 18.4% 증가했다. 다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감소했다. 소니는 지난해 매출(11조5398억엔)과 순이익(1조2082억엔)이 모두 상승했다.
글로벌 거물급 투자자들이 일본을 주목하는 것은 일본의 이런 변화를 먼저 알아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박 교수는 현재와 같은 분위기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경계했다.
그가 현재 분위기에 다소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먼저 일본 경제가 불황 이후 전혀 회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반등-침체-회복-반등’이란 사이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반등이 추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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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일본 경제가 침제기에 접어든 이후 경제가 반등의 조짐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면서 “2003년부터 2007년, 2013년부터 2018년도 사이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외부 위기가 닥치면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라면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경제가 좋았다가 다시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리먼 쇼크가 닥쳤고, 2019년에 다시 일본 경제가 힘들어진 이유는 미·중 갈등의 본격화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일본의 위기 회복력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와 관련한 주된 이유로 일본 사회의 고령화 현상을 들었다. 노화로 체력이 약하니 위기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하려 해도 힘에 부치고, 시간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걸린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제가 반등할 때 여기에 가속도를 붙일 여력도 모자라다. (박 교수는 그래서 일본을 사람 나이 60대로 비유하며 ‘관리’란 키워드를 언급한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과 비교해봐도 우리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1여 년 정도 지나면 회복이 됐지만 일본은 3~4년이 걸려야 겨우 침제기 직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면서“고령화 사회 문제는 정말 간단치 않다”고힘줘 말했다.
그는 “고령화에 접어들면 점점 줄어드는 인구 자체도 문제지만, 위기 때마다 느끼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지기 때문에 투자와 소비 등 경제 붐을 일으키는 활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하게 위축된다”고 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침체기 이후 일본인들은 소비에 인색하기로 유명하지만 느닷없는 위기가 닥치면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에서도 보복 소비가 일부 있었지만, 우리처럼 명품 시장이 활황세를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박 교수는 “현재의 경제 활황 분위기가 의미 없지는 않다”면서 “잃어버린 30년 동안 더 이상 (국가가) 추락하면 안된다는 절박감 속에 계속 반등 사이클을 만들어 내고 있고, 이것이 일본이 과거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탈락한 후 회복을 하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거리.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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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인구 감소 문제만 하더라도 “물론 여전히 난제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정책 노력으로 합계출산율이 1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국의 최근 인구 감소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도 한때 잘 나갔지만 쇠락했던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부터였고, 그 기저에는 더 이상 추락하면안 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소니를 예로 들며 “소니가 부활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한때 세계를 석권 했지만 경쟁 업체에 밀린 후 적자를 면치 못했던 TV 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한 이후”라고 했다. 히타치도 2010년 TV 부문을 완전히 정리한 후 스마트시티, 솔루션 분야 등에 진출해 환골탈태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기업들의 변화가 일본 고용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특히 청년 일자리는 2013년도, 즉 직전 경제 호황기부터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청년 인구가 줄어서 고용이 좋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인구가 1000만 명에서 800만 명 정도로 줄 때 청년 고용 상황은 더 악화됐다”면서 “경제 사이클이 바뀌면서 청년 고용이 좋아졌다”고 했다.
이와는 별개로 고령화로 인한 인재 부족 문제는 숙제라는 지적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신들이 강점이 가진 소재 기술들을 이용해 우주, 로봇 등 다가올 미래 시대를 대비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재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우주시대가 열리면 지구와 다른 환경에서 달려야 하는 자동차는 소재 등에서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고, 일본 기업들의 강점이 빛을 발할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관련 신기술을 계속 개발해나갈 인재들이 없으면 새로운 기회 대처 능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TSMC의 일본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계기로 일본 내 반도체 부흥 붐이 일고 있지만 여기서도 벌써부터 인재 확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토요타,소니, 소프트뱅크, 덴소, NTT, NEC, 키오시아,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8곳이 뭉쳐서 일본 반도체 부활의 기치를 내걸고 라피더스라는 회사를 출범시켰는데, 이를 두고 닛케이는 “엔지니어 확보에 라피더스의 성패가 달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부족하지 않은 청년 일자리로 인해 젊은이들이 AI, 반도체 등 첨단 학문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도 고급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 중 하나”라면서 “대안은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해야 하지만 미국과 같은 이민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 정부와 기업, 사회가 일본 경제의 부활을 위해 여느 때보다 한마음이라는 것”이라면서 “과거 변화의 시기를 놓쳐 도태되었던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임금 인상, 기업 지원, 증세 문제 등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정책과 관련해서는 여야의 이견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최근 일본 증시로 밀려드는 외국인 투자와 관련해서 “금리 인상이 일어날 때쯤 외국인들의 주식 팔자 흐름이 한 차례 나타날 것 같다”면서 “다만 이들이 소위 단타를 칠지, 아니면 중장기로 일본에 남아 있을지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시장의 관심인 금리 인상과 관련해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경기를 살려 세수도 확보하고 인플레이션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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