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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흔들리는 수입 곡물 시장

"조심스럽다" 밀 가격 떨어져도 라면값 확 못 내리는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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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라면 업계에 이어, 제분 업계도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오는 26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간담회를 앞두고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이후 가격 인하 관련 입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중앙일보

지난 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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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6일 제분 업계 간담회 예정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날 대한제분·CJ제일제당·삼양사 등 10여 개 국내 제분 업체에 ‘26일 업계 간담회 개최’에 관련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라면값에 이어 밀가룻값이 도마 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가 한 방송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라면값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지 약 일주일 만이다. 당시 라면 업계는 국제 밀 가격은 내렸지만, 밀가루 가격이 하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에는 밀가루를 공급하는 제분 업계에 이목이 쏠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일부 제분 업체가 밀가루 가격을 내렸거나 내릴 계획이라고 해 감사를 전하고, 업계 애로사항 등을 청취할 예정”이라며 “밀 선물 가격이 지난해 5월부터 계속 낮아지고 있으니 이를 고려해서 밀가루 가격을 책정해달라는 협조 요청의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업체가 가격을 내릴 계획은 아니”라면서도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니 전체적으로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분 업계는 이날 “간담회 참석은 맞지만, 아직 가격 인하를 확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원재료(밀) 변동 추이는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가격 인하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아직 가격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삼양사도 “현재 가격 인하 관련된 것은 말하기 조심스럽다”며 “간담회 가서 얘기를 들어보고 검토 하겠다”고 알려왔다.

실제로 최근 국제 밀 가격은 내림세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소맥(SRW·연질밀) 기준으로 이달 국제 평균 가격은 t당 239달러였다. 지난해 5월 419달러 대비해 43%가량 떨어진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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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다만 제분 업계는 “국제 밀 가격이 내린 것은 맞지만, 이런 내림세가 곧바로 밀가루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고 주장한다. 국제 밀 가격은 시카고 선물거래소 가격 기준으로, 실제 수입과 최소 6개월 가량의 시차가 나기 때문이다. 한 제분 업계 관계자는 “선물 가격이 가장 높았던 지난해 6월 구매한 원물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에 들어왔다”며 “실제 밀가루를 생산하는 데에도 수개월 이상의 시차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밀가루 원료인 원맥을 벌크선으로 수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운송비·인건비·통관비가 추가로 들어간다”며 “원맥 가격에 비해 수입 통관 가격은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제분용 밀의 수입 가격은 지난 2021년 6월 ㎏당 361원에서 지난해 9월 681원으로 89%가 올라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한 뒤, 조금씩 내려 지난달 562원을 기록했다. 최고치 대비는 17.4% 하락했지만, 2년 전 보다는 오히려 55.6% 올랐다. 수입 가격은 수입 물품 가액에 운임·보험료·관세 등을 합친 금액이다.

중앙일보

김영희 디자이너





“정부 개입은 경쟁력 저하 부를 수도”



이처럼 제분 업계는 실질적 수입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만큼 가격 인하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제분 업체는 “밀 선물 가격이 가장 고점이었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로 밀가루 제품 출고가를 동결해왔다”며 “지금 밀가루 가격을 추가로 조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가격 담합 등 감시 기능에 그쳐야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정부 주도 가격 개입은 결국 정부 주도 가격 담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독점 기업이라면 의미가 있겠지만 사기업이라면 자율성 훼손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지연·나상현 기자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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