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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이슈 자율형 사립고와 교육계

사교육비 줄인다면서 자사고·외고는 존치?…학원가는 ‘특목고 입시반’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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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지침에

학부모·전문가, 고입 과열 초래 우려

“사교육 부담 경감과 엇나가는 정책

초등학교부터 특목고반 운영 할 것”

경향신문

정부·여당이 사교육 과열을 지적하며 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한 가운데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자사고, 외고, 국제고 입시 설명회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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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밀집 지역 한 건물에 ‘특목고·외고·자사고·영재고·일반고·특목대비반 All-CARE’ 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문구 아래에는 주요 자율형사립고의 이름이 적혔다. 특목고 입시를 대비하는 전문학원 간판이다. 이곳만이 아니다. 학원가 곳곳에 ‘oo학원 특목관’ 등의 간판과 홍보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대치동의 한 영재학원 관계자는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좀 일찍부터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나. 그렇다면 좀 특수하게 선발되는 고등학교를 보내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입시학원 원장은 “학부모들이 고입에 신경 쓰는 이유는 대입과 교우관계 등 주변환경”이라며 “영재학교같은 경우에는 보통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남의 한 자사고˙특목고 대비 전문학원 홈페이지에는 ‘특목/자사고 압도적 실적’ ‘설명회 전 좌석 마감’ 등 홍보문구와 매년 민사고 등 주요 자사고 합격자 수가 적혔다. “상반기 진행된 설명회에 정원마감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학부모들이 주로 활동하는 네이버카페에는 주요 자율형사립고 입학설명회 일정 등이 활발하게 공유됐다. 한 누리꾼은 “설명회가 선착순 마감이라 신청 못 하는 경우도 있으니 빨리 신청해야 한다”며 “초등 (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도 많이 참석한다”고 했다.

전날 정부·여당은 올해 대학수학능령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출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킬러 문항을 없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존치하겠다고 했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고교서열화 및 초·중등 사교육 과열을 조장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사교육 부담 경감과 엇나가는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경향신문

정부·여당이 사교육 과열을 지적하며 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한 가운데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수업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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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특목고가 사교육비를 끌어올린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확인됐다. 통계청이 실시한 ‘2022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약 41만원인 반면 자사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은 월평균 약 69만원, 외고·국제고 진학 희망 중학생은 약 64만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했다. 초등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 사교육비로 월평균 약 33만원을 지출했는데 자사고를 지망하는 경우는 약 57만원, 외고·국제고를 지망하는 경우는 약 53만원을 지출했다.

같은 조사에서 전년 대비 사교육비 증가율은 초등학교(37만2000원)가 13.4%로 가장 높았고, 이어 중학교(43만8000원) 11.8%, 고등학교(46만원) 9.7% 순이었다. 전체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초·중등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결정이 고교 입시 과열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이미 고교 입시도 대입 못지않게 과열된 상황이다. 서울 학원가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외고반’ ‘과학고반’을 운영하고 그곳에서 수년 이상 수강한 애들이 과학고·외고 등 특목고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연구소장은 “한창 특목고 열풍이 불 때 학원 절반이 특목고 반으로 운영된 적도 있다”면서 “정부 발표에 따라 다시 고입 사교육이 과열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한쪽에서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자사고·과학고에 가면 의대 등 대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초등학교부터 특목고반을 운영하는 흐름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같은 사교육인데 대입은 안되고 고입은 된다는 건 일관된 철학이 없는 것”이라며 “앞으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주춤했던 외고·자사고 등 특목고 쏠림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관련 사교육 시장도 팽창될 수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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