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원희룡 장관이 거주하는 서울 동작구 래미안트윈파크 아파트 정문 앞에서 시위대가 확성기와 앰프 등을 사용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유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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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9시 50분쯤 서울 동작구 래미안트윈파크 아파트 정문 앞.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지만 시위대 20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단결투쟁’이라고 쓰인 빨간 조끼를 입고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된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앰프를 설치하고 대형 현수막을 내걸며 분주하게 집회를 준비하던 이들은 오전 10시가 되자 일렬로 섰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확성기를 든 남성이 “강제 수용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선창하자, 나머지 시위대가 소리를 높여 후창하기 시작했다. 시위가 시작되자 아파트 곳곳에서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창문을 닫는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시위는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 아파트 단지 앞에 시위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사를 온 올해 2월부터다. 이후 이 아파트 단지 앞에서는 4개월이 지나도록 ‘동자동 대책위’, ‘전세사기 대책위’ 등이 크고 작은 이익단체들이 매주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개발 철회,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요구 등 시위 내용도 다양하다. 문제는 이들이 주말 아침은 물론, 평일 한밤중인 새벽 1시까지 확성기와 앰프 등을 사용해 시위를 진행해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특히 정문에서 불과 10m 떨어진 래미안트윈파크 103동과 104동 주민들의 고충이 크다고 한다. 103동 주민 김모(47)씨는 “화요일이었던 지난달 16일 밤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시위대가 틀어놓은 앰프 음악소리가 이어져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53)씨는 “앞으로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창문을 열어놓는 일이 잦을 텐데 소음이 걱정”이라며 “한밤중과 이른 아침에도 시위를 그냥 내버려두는 경찰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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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에는 민노총 건설노조가 오전 7시에서 8시까지 출근시간에 원 장관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일 것이라 예고했고, 참다못한 주민들은 원 장관을 찾아가 자신들의 고충을 전달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원 장관은 지난 4일 자필편지를 통해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사과문에는 “올해 2월 제가 이사 온 이후 저로 인해 아침마다 불편을 겪으신 점 너무 죄송하다” “주민 여러분의 불편을 하루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원 장관 거주 아파트 사례 외에도 올해 고위공직자 자택 앞에서의 시위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은 사례는 여럿 발생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자택이었던 광진구 자양동 아파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주하는 강남구 도곡동의 아파트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열렸다. 특히 지난달 초까지 오 시장이 거주하던 광진구 아파트에서는 시위대가 앰프와 확성기를 이용한 시위·집회에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들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후 오 시장은 “더 이상 이웃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없다”며 용산구 한남동 공관으로 이주했다.
4월 2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 래미안 도곡카운티 아파트 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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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이러한 시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아닌 특정인 주거지 앞에서의 시위가 지속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 소음과 관련해 최고·평균 소음 기준을 위반할 때 경찰이 제재할 수 있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소음 기준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다. 집회·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일몰부터 오전 0시(야간)까지는 60㏈(데시벨), 오전 0~7시(심야)에는 55㏈을 넘어야 경찰이 제재할 수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경우 주거 지역 인근 집회·시위에서 소음 기준이 밤에는 40dB을 초과할 수 없는 등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다”며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시민 다수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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