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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초동’이 뭐길래[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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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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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덕질 DNA는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덕질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뉜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덕후’와 ‘머글’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머글에게 덕후의 언어는 마치 외국어 같습니다. 수시로 진화를 거듭하는 K팝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가 심화하면서 이 간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덕후 DNA가 없더라도 ‘학습’은 할 수 있습니다. ‘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는 이 간극을 줄여보는 코너입니다. K팝 세계의 트렌드와 토막 상식을 전합니다. 덕후는 못 되어도, ‘좀 아는’ 머글은 될 수 있습니다.

※머글 :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유래한 단어로 마법사가 아닌 보통의 인간을 가리킨다. 현재는 특정 분야를 깊이 파는 ‘덕후’(오타쿠)의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지난 9일 K팝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의 정규 3집 앨범 <★★★★★>(파이브스타)가 ‘초동’(첫 일주일 판매량) 461만7499장을 기록하며 K팝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한국 인구 10분의 1에 가까운 숫자도 놀랍지만, 또 다른 보이그룹 세븐틴이 신기록(455만장)을 세운 지 불과 한 달 만의 경신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그룹 에스파가 169만장을 팔아치우며 K팝 걸그룹 최고 기록을 세웠다.

초동은 무서운 속도로 ‘갈아치워지고’ 있다. 그런데 K팝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머글’들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뜬다. ‘대체 초동이 뭔데?’ ‘왜 초동이 중요한데?’

초동 판매량은 발매일을 기준으로 1주일간 팔려나간 앨범의 수량(한터 차트 기준)을 가리킨다. 대개 초동이라 줄여 부른다. 1주일이 지난 이후 판매되는 앨범까지 집계하는 ‘총판’(총 판매량)도 있지만 팬덤이나 언론에서 주로 언급되는 것은 초동이다. 해당 그룹이 확보한 팬덤의 규모와 ‘화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일단 ‘사고 보는’ 코어 팬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다. 음악을 들어본 뒤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앨범을 사는 일반 대중의 소비 패턴과 확실히 구별된다.

자신이 응원하는 그룹의 성적에 민감한 팬덤으로서는 초반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룹이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시기에 음반이 판매돼야 음악 방송의 점수 집계에 반영돼 1위를 할 수 있다. 초동은 그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성적표인 동시에 다른 성적을 올려주는 수단인 셈이다.

K팝의 현재를 보여주는 초동은 의외로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 ‘초동’을 검색하면, 2018년 방탄소년단(BTS)의 선전을 소개하는 칼럼에서 처음 등장한다. 본래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쓰이던 개념이 2세대 아이돌이 가요계를 장악한 2000년대 후반 국내로 건너왔고, 2010년대 이후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K팝 산업이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팬덤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 것이다.

소속사가 그룹 인기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초동 성적을 활용하고, 언론이 이에 주목하고, 팬덤이 그룹을 응원하기 위해 ‘화력을 모으는’ 과정에서 초동은 어느새 K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준이 됐다.

초동 성적이 주목받는 데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초동이 코어 팬덤 규모를 측정하는 척도로 여겨지면서 각 그룹별로 더 높은 기록을 세우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K팝 팬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초동 성적을 기준으로 한 ‘줄 세우기’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로 인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팬도 점차 늘고 있다.

경향신문

지난 5월 3번째 미니앨범 ‘마이 월드’로 K팝 걸그룹 초동 신기록(169만장)을 세운 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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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을 시작한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은 현역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1~4군으로 나눠 경쟁을 시켰는데, 이때 초동을 기준으로 삼아 논란이 됐다. 한 보이그룹의 팬인 A씨는 “n군은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음지에서 아이돌을 평가하려고 만든 개념인데 이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서열을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악질적”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이어 초동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술이라고 지적했다. “초동 경쟁을 위해 실물 앨범을 과도하게 사는 문화는 문제가 있어요.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포토카드를 랜덤으로 넣는 것도 결국 총판(초동 포함)을 올리려는 상술이고요.”

기후위기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도 크다. 또 다른 보이그룹의 팬인 B씨는 “듣지도 않는 앨범을 사서 쓸데없는 쓰레기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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